[사설] ISD 첫 패소…정책 잘못하면 兆단위 국제배상 일상화된다

입력 2019-12-23 17:33   수정 2019-12-24 00:14

이란 다야니가(家)가 옛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합병 시도 과정에서 한국 측 계약 해지로 손해를 봤다며 제기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에서 우리 정부 패소가 확정됐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에서 패소한 뒤 중재지로 영국 고등법원을 선택했으나 여기서도 패했다. 이에 따라 계약보증금에 이자까지 얹어 730억원을 물어주게 됐다. 한국을 상대로 진행 중인 총 9조원 규모(10건)의 ISD 대응에도 비상이 걸렸다.

ISD는 투자국가 정부 잘못으로 피해를 입은 기업이 제기하는 국제 소송이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생긴 제도로, 투자기업 승소율이 60~70%에 이른다. 이번 소송에서도 정부와 집행기관인 캠코가 계약이행 불충분 판단, 계약금 몰취 등에 대한 국내법상 근거를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ISD에서 우리 정부 패소 사례가 나옴에 따라 비상한 대응이 다급해졌다. ISD 제도와 국내 대응 전략에서 문제점은 없는지 살펴보는 한편, 정부 내 국제소송 전문 인력 보강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이번 건은 금융위원회가 총괄 대응했는데 이 정도로는 어렵게 됐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법무부 등이 참여하는 범(汎)정부 상시 태스크포스 구성도 생각해볼 만하다.

궁극적 대응책은 정부의 인식 전환이다. 강압적 정책이나 ‘우격다짐 행정’이 국제 규범에 어긋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리끼리의 관행’이라는 얘기나 ‘주주 위의 정부’라는 비판이 더 이상 나와서는 곤란하다. 엘리엇이 제기한 ISD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때 한국 정부가 국민연금을 동원해 주주인 자신이 손해봤다는 게 핵심 주장이다. 투자의 국경이 낮아지고 투자자 보호도 강화되는 시대다. 우물 안 시각, 특정 이념 편향 정책으로는 국제 규준을 따라갈 수 없다. 개방·자유 경제를 부인해서는 한국이 설 자리가 없다. 정책을 잘못하면 혈세로 퍼주는 조단위 배상이 일상화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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