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회항’ 사태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23일 동생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에게 반기를 들고 나섰다. 남매간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조 전 부사장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원은 이날 ‘한진그룹의 현 상황에 대한 조현아의 입장’이란 자료를 통해 “조원태 한진칼 대표이사가 선대 회장의 공동경영 유훈과는 다르게 한진그룹을 운영하고 있다”며 “지금도 가족 간 협의에 무성의와 지연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조 전 부사장과 법률대리인의 거듭된 요청에도 최소한의 사전 협의도 하지 않고 경영상 중요 사항들이 결정되고 발표됐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한진그룹은 입장문을 내고 “논란이 발생한 것에 대해 고객과 주주에게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한진그룹은 조 전 부사장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채 “회사 경영은 회사법 등 관련 법규와 주주총회, 이사회 등의 절차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조현아, 경영 배제에 불만
"한진칼 공격한 강성부펀드와도 대화"
“KCGI(강성부 펀드)와도 대화하겠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측이 한진그룹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KCGI 측과 연대할 수도 있다는 점을 내비쳤다. 조 전 부사장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원의 담당 변호사는 2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조원태 한진칼 대표의 독단을 멈추기 위해선 모든 주주와 대화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KCGI는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지분을 17.29% 보유하고 있다. 한진가(家)의 보유 지분은 24.79%다. 조 전 부사장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간 갈등이 경영권 분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경영 복귀 반대에 불만 품은 듯
조 전 부사장 측은 조 회장이 주요 경영사항을 상의 없이 혼자 결정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법무법인 원은 자료에서 “상속인 간 합의나 논의 없이 (조 회장이) 대규모 기업집단(한진그룹)의 동일인(총수)으로 지정됐다”고 주장했다. 또 “조 전 부사장의 (경영) 복귀 등에 대해서도 합의가 없었지만 대외적으로는 합의가 있었던 것처럼 공표했다”고 강조했다.
조 전 부사장 측은 가족 중 홀로 경영에 복귀하지 못한 점을 부각시켰다. 지난해 4월 조현민 한진칼 전무의 ‘물컵 갑질’ 사건 당시 조 회장을 뺀 가족이 모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조 전무는 한진칼로, 이명희 전 이사장도 정석기업 고문 등으로 복귀했다. 연말 인사 때도 조 전 부사장의 경영 복귀가 이뤄지지 않자 그동안 쌓인 감정이 터져나왔다는 분석이다.
3남매 모두 상속세를 내야 하지만 조 전 부사장은 고정 소득이 없어 세금 납부에 대한 부담이 큰 상태다. 조 회장은 지난달 19일 미국 뉴욕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상속세와 관련, “나는 소득이 있지만 다른 사람(남매들)은 소득도 없어 힘들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런 상황도 조 전 부사장이 입장문을 내는 데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조 전 부사장 측 자료에 나온 내용은 정상적인 가족이라면 사적으로 얘기하면 될 것들”이라며 “이를 외부에 공표한 것은 그만큼 갈등의 골이 깊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조 전 부사장 측은 이날 조 회장을 ‘한진그룹 회장’ 대신 ‘한진칼 대표이사’로 언급하며 총수 지정을 인정하지 않는 듯한 분위기였다. 한진그룹도 조 전 부사장 때문에 낸 이날 입장문에 조 전 부사장을 아예 언급하지 않고 “논란에도 불구하고 경영진과 임직원들은 회사 경영에 차질을 빚지 않고 주주 및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경영권 분쟁 본격화 가능성도
남매간 갈등이 깊어지면서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조 전 부사장 측이 KCGI와도 대화할 수 있다고 밝힌 점에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KCGI는 단일주주로는 한진칼의 최대주주다. 조 회장 측이 ‘백기사’로 미국 델타항공(한진칼 지분 10% 보유)을 끌어들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경영권 분쟁이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여지가 생긴 것이다.
가족 간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면 최악의 경우 한진그룹 오너들이 경영권을 잃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고(故) 조양호 회장이 남긴 한진칼 지분을 법정 상속비율대로 나눠 가짐에 따라 이명희 고문(5.31%)을 비롯해 조원태(6.52%)·조현아(6.49%)·조현민(6.47%) 등 3남매 지분율이 엇비슷해졌다. 지금까지는 조양호 회장 일가가 힘을 합친 데다 우호세력인 델타항공 지분까지 합칠 경우 KCGI와의 지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지만, 조 전 부사장이 이날 반기를 들면서 상황은 복잡해졌다.
당장 조 전 부사장이 어머니인 이 고문과 손잡은 뒤 KCGI와 동맹을 맺으면 지분율은 역전된다. KCGI는 지난 5월 이후 한진칼 주식을 계속 사들여 지분율을 17.29%로 종전보다 1.31%포인트 높였다고 이날 공시했다. 이날 한진칼 주가는 전날보다 20% 급등하며 장을 마쳤다.
김재후/이선아 기자 hu@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