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측을 압박하겠다며 전면파업을 외친 르노삼성 노조가 체면을 구겼다. 노조원 다수가 정상 출근을 하며 노조 결정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르노삼성 노조는 지난 23일 전면파업에 해당하는 주·야간 8시간 파업을 단행했다.
올해 임단협에서 사측이 기본급 인상 등의 요구에 응하지 않자 파업으로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르노삼성 노조는 △기본급 15만3335원(8.01%) 인상 △노조원 한정 매년 통상임금의 2% 추가 지급 △추가 인력 채용 △임금피크제 폐지 △일시금 및 격려금 400만원 등 26개 항목을 요구했다.
◇ 노조 파업 결정에 반기 든 노조원들
노조가 파업을 결정했다면 노조원은 그에 따르는 것이 당연하지만, 르노삼성 노조원들은 이에 반기를 들었다. 르노삼성에 따르면 이날 비노조원을 포함한 주간 출근인원 1450명 가운데 1150여명이 출근했다. 노조원으로 한정하면 전체 노조원 1700여명 가운데 약 60%가 파업 결정을 무시하고 정상 출근에 나섰다. 르노삼성 부산공장은 약 2100명이 주야간으로 근무하는데, 이날은 야간 근무 없이 주간만 운영됐다.
르노삼성 노조원들이 노조의 파업 결정을 무시하고 정상 출근한 일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6월 노조가 전면파업을 단행한 때에도 약 60%의 노조원이 정상 출근했다. 당시 르노삼성 노조 집행부는 사측과 임금 및 단체협약 잠정합의안을 내놓고도 "만족할만한 결과가 없는 것이 사실"이라며 "변변치 않은 안을 받아들였다. 오류를 바로잡는 것은 투표에 달려있다"고 발표해 잠정합의안 부결을 유도하는 등 노사갈등을 부추겼다. 결국 이에 반발한 노조원들이 노조의 파업 결정에도 정상출근에 나섰고, 동력을 잃은 노조 집행부는 마지못해 사측과 임단협을 합의하며 노사 상생협약도 작성한 바 있다.
르노삼성 노조 집행부와 노조원의 반목은 기존 기업노조가 집행부를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찬탈당한 것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우선 르노삼성에는 3개 노조가 있다. 근무자 대다수인 1700여명이 소속된 단일 기업노조, 30여명 수준인 민주노총 금속노조 르노삼성자치회, 과거 기업노조 집행부가 지난달 설립한 제3노조가 그것.
◇ 기업노조-민주노총 '주객전도' 반목
과거 기업노조와 민주노총이 경쟁하던 시기, 르노삼성 근로자들은 상급단체가 없는 기업노조를 선호했다. 기업노조는 2000명에 달했고 민주노총은 200명 수준에 그쳐 교섭권도 기업노조에 있었다. 경쟁에서 밀린 민주노총은 전략을 바꿨다. 지난 2016년 대다수인 약 170명이 탈퇴하며 기업노조로 자리를 옮겼다.
민주노총에서 기업노조로 대거 이전이 이뤄졌어도 당분간은 조용했다. 기업노조는 조합 가입 2년 이상 지나야 노조위원장 출마 자격을 주기 때문이었다. 2년이 지난 지난해 11월 노조위원장 선거에 민주노총 출신 조합원들이 당선(득표율 51.5%)되며 집행부를 장악했다. 현재는 노조위원장, 수석부위원장, 부위원장, 사무국장 등 노조 집행부 전원이 금속노조 출신이다. 부산공장 상무집행부 8명 가운데 7명도 금속노조에서 온 이들이다.
교섭권을 가진 기업노조를 차지한 민주노총 출신들은 지난해 임단협에서 민주노총 산하 완성차 업체의 단체협약 규정 도입을 주장하고 금속노조 가입도 선언했다. 그간 기업노조가 선호하지 않던 전면파업 등에 나서는가 하면 아예 금속노조가 르노삼성 노조를 대표해 외부 행사에 얼굴을 비추는 일도 벌어졌다.
주객이 전도된 상황에 기업노조원들의 민심은 들끓었다. 노조가 전면 파업을 결정하고 사측이 직장폐쇄로 대응하자 침묵하던 노조원들 사이에서는 집행부를 탄핵하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 "우리도 현기차처럼" VS "뭘 보고 믿나"
민주노총 출신을 바라보는 기업노조원들의 민심은 반으로 나뉜다. 우선 르노삼성 직원들도 현대차나 기아차처럼 고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민주노총 출신들의 주장에 '투쟁에 따르면 지금보다 약간이라도 임금이 높아지지 않을까' 기대하는 이들이 있다. 평균 임금만 놓고 본다면 르노삼성 근로자 평균 임금이 현대차 등 다른 동종업계 기업보다 낮다는 것은 사실이다. 노조는 2017년 기준 현대차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9000만원을 넘었지만, 르노삼성 부산공장은 7800만원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기업노조원의 절반 가량은 '지금까지 민주노총이 보인 모습이 있는데 뭘 보고 믿느냐'며 눈살을 찌푸리는 이들이다. 이들은 민주노총 출신 집행부가 현장 목소리를 대변하지 않으면서 꼭두각시 역할만 한다고 비판한다. 고용안정을 위해 신차 배정이 절실한 상황에서도 파업만 일삼으며 회사와 근로자의 앞길을 망친다는 지적이다.
평균 임금 차이도 허황된 주장이라는 것이 이들의 시각이다. 르노삼성 노조원 평균 연령은 38세이며, 현대차 울산공장 노조원 평균연령은 50세가 넘어간다. 르노삼성 고참 직원 중에는 1억원 이상 받는 이들도 있는 만큼 나이를 감안하면 두 회사 사이 평균 임금 차이는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인 한국GM 노조의 모습도 르노삼성 노조원들에게는 교훈이 됐다. 지난해 한국GM 군산공장이 폐쇄되며 노사는 300여명의 휴직자에게 생계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휴직자들이 6개월 동안 정부의 고용유지 지원금을 받고, 이후 2년 반은 노사가 절반씩 부담해 인당 월 225만원을 생계비로 지원하자는 합의였다. 사측은 합의에 따라 휴직자에게 월 112만5000원을 지급했지만, 한국GM 노조는 임시대의원대회에서 해당 안건이 부결됐다며 생계비 지원을 거부했다. 필요없어진 노조원들을 민주노총이 앞장서서 사지로 몰아간 것.
업계 관계자는 "현장 목소리를 무시하고 상급단체 명령만 따르는 노조는 결국 외면받게 된다"며 "이대로라면 내년으로 예정된 르노삼성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현 집행부가 유지되긴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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