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오피오이드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신약 연구자인 도널드 커시가 쓴 《인류의 운명을 바꾼 약의 탐험가들》이라는 책에 나온 내용입니다. 오피오이드의 기원을 알려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약인 아편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아편은 야생식물인 양귀비의 활성 성분인데요.
아편은 영어로 오피움(opium)이라고 합니다. 그리스어로 즙을 뜻하는 오피온(opion)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양귀비 열매에서 나오는 즙이란 뜻이죠. 오피오이드라는 명칭도 여기에서 비롯된 겁니다.
양귀비에서는 모르핀, 코데인, 옥시코돈, 헤로인 등의 성분이 나옵니다. 모르핀은 1826년 독일의 젊은 약사 프리드리히 제르튀르너가 처음으로 아편에서 순수한 활성 성분을 분리한 것입니다. 모르핀은 1827년 독일 다름슈타트에 있는 천사약국에서 생산되기 시작했는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습니다. 약국 주인은 에마누엘 머크였고 시골 작은 약방은 세계적인 생명공학회사 머크가 됐습니다.
1897년에는 독일 바이엘 연구진이 새로운 화학 합성 기법을 이용해 모르핀을 변화시켜서 새로운 물질을 만들었는데요. 질병을 치료하는 데 영웅적인 효과를 내라는 기대에서 헤로인이라고 지었다네요. 정작 어떤 병도 치료하지 못하는데 말이죠. 경악할 만한 사실은 바이엘이 헤로인을 모르핀 중독을 치료하는 중독성 없는 약으로 판매했다는 겁니다. 헤로인은 인체 대사 과정에서 모르핀을 포함한 몇 가지 물질로 분해되는데, 모르핀보다 효과도 강력하고 중독성도 훨씬 강합니다. 아편 중독을 악화시킨 바이엘은 맹비난을 받았는데요.
아편의 작용 원리는 1975년에서야 밝혀졌습니다. 체내에서 자연 발생된 모르핀이라는 뜻의 ‘엔도제너스 모르핀’을 줄여서 엔도르핀이 됐습니다. 뇌하수체와 시상하부에서 생기는 호르몬인 엔도르핀은 행복감을 느끼고 고통스러운 감각을 줄여줍니다. 중독성과 사망 위험이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에도 불구하고 오피오이드가 사용되는 이유는 극심한 고통도 완화할 수 있는 가장 뛰어난 진통제이기 때문입니다. 과학 기술이 이렇게 발전했는데도 자연에서 얻은 양귀비를 따라갈 수 없다니 신기하고도 놀라운 일입니다.
ace@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