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를 보내려 우체국에 가니 창구에 크리스마스 씰이 눈에 들어온다. 어린 시절, 겨울방학이 다가올 때쯤이면 선생님께서는 늘 크리스마스 씰을 한가득 가져오셨다.
그 당시 크리스마스 씰을 우표로 착각해 대신 붙였다 반송됐던 난감한 일도 있었는데, 그때는 아마 씰만 붙여도 우편물이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늦어도 2010년 초반 때까지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크리스마스 씰과 관련된 기억 하나쯤은 있을 테다. 그런데 어느샌가 우리의 주변에서 크리스마스 씰이 없어진 느낌이 든다. 왜일까.<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 결핵 유행이던 19세기…덴마크 우체부가 결핵 아이들 돕기 위해 씰 만들어
크리스마스 씰은 19세기 말, 결핵이 온 유럽에 만연하던 시기에 덴마크의 한 우체국 직원이 카드와 소포에 씰을 붙여 판매하면 결핵을 앓는 어린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것부터 시작 됐다.
우리나라에는 1932년 캐나다 선교사인 셔우드 홀의 주도로 남대문을 배경으로 한 첫 씰이 발행됐다. 이후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을 거치며 한동안 발행이 중단됐지만, 대한결핵협회가 창립된 1953년부터는 매년 협회가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해 결핵퇴치기금 모금을 진행하고 있다.
60여 년 넘게 이어져 온 크리스마스 씰. 씰을 판매하며 모인 돈은 매년 취약계층 결핵 환자 발견, 환자 수용시설 지원, 학생 결핵 환자 지원, 결핵홍보, 결핵균 검사와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 사용되고 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 학교서 강매 금지·결핵 대한 인식 변화로 흔적 감춰가는 씰
좋은 취지에도 크리스마스 씰 판매량은 급감하는 추세다. 크리스마스 씰 모금액은 2008년 57억 원에서 지난해 24억3천만 원으로 절반 이상 크게 줄었다.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인터넷의 발달 등으로 서로 우편과 편지를 주고받는 문화가 사라졌다는 것이 주원인이겠지만, 결핵을 과거에 유행했던 질병으로 인식하면서 자연스레 크리스마스 씰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까닭도 있다. 2016년도 대한결핵협회 설문조사의 결과를 보면 결핵은 '과거에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진 질병이다'라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32.9%나 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결핵협회 관계자는 "과거보다 결핵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2017년 기준 한국은 10만명 당 결핵 발생률 70명, 사망률은 5명으로 각각 OECD 회원국 중 1위"라며 "제도 사각지대의 소외된 결핵 환자를 지원하기 위해 씰을 통한 활발한 모금이 절실하다"고 전했다.
2014년부터 학교 등 공공기관에서 의무적으로 크리스마스 씰을 학생들이 사도록 강제하는 일이 사라지는 것이 법제화돼 씰에 대한 수요 자체가 준 것도 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 60년간 국내서 발매됐던 크리스마스 씰
수요가 줄었지만은 크리스마스 씰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했다. 우리나라 첫 씰은 1932년으로 남대문을 소재로 했다. 우리나라에 씰을 도입한 셔우드 홀은 거북선을 소재로 한 씰을 발행하려 했지만,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때문에 소재를 바꿨다. 홀이 제안했던 거북선은 30여년이 지난 1967년에 등장했다.
이듬해는 캐럴을 부르는 소년소녀를 그려넣은 씰이 20만매가 발행됐다. 1937년 씰은 운보 김기창 화백이 팽이치는 소년들로 도안했다.
일본과 독도 관련 마찰이 유난히 많이 잦았던 2006년에는 독도, 2009년에는 세계피겨선수권 대회서 세계신기록을 세웠던 김연아가, '뽀통령' 붐이었던 2011년에는 뽀로로와 친구들, 2016년에는 독립운동가 10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우리의 기억에서는 희미해졌지만 올해도 역시 크리스마스 씰이 발매돼 판매 중이다. 2019년 씰은 '평화의 섬, 제주도와 해녀문화'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결핵협회가 운영하는 쇼핑몰에서 재고가 없는 일부 발행년도를 제외하고 60여년간 우리와 함께 해왔던 크리스마스 씰의 역사를 만나고 구매할 수 있다.
연말인 만큼 이런저런 핑계로 무심했던 이들에게 마음을 담아 손편지로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해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행복한 성탄절에도 병상에 누워 있는 결핵 환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게 크리스마스 씰을 붙여보자. 오는 2020년에는 걱정보다는 즐거움과 기쁨이 조금이라도 더 많기를 기원하면서 독자 여러분에게도 성탄 인사를 드린다.
배성수 한경닷컴 기자 baeb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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