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中企 창업 세대의 커지는 가업승계 고민

입력 2019-12-25 17:48   수정 2019-12-26 00:15

2년 전 경기 안산 반월산업단지의 한 중소기업을 취재했다. 기계 및 전자 부품 생산설비를 제조하는 기업이었다. 외부에서 급한 업무를 보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30대로 보이는 여성 팀장이 기자를 맞았다. 현장 작업복을 걸쳐 입은 그는 생산라인은 물론 회사 사정 전반을 꿰뚫고 있었다. 지나는 말로 “이곳 사장님 가족 되느냐”고 물었다. 짐작대로 대표이사의 딸이었다.

거침없이 설명하던 그는 “인건비와 재료비 급증, 국내 발주 물량 감소, 납품가격 과열 경쟁 같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지금이라도 해외 진출(공장 이전)의 막차를 타야 하는 것 아닌지 고민된다”고 했다. 창업자 퇴진 이후 회사 경쟁력을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몇 년 새 이런 경험은 낯설지 않은 일이 됐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중소·중견기업을 취재하다 보면 2세 경영자를 만나는 일이 적지 않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2세 경영자를 찾아내는 ‘감’도 생겼다.

국내 중소·중견기업들은 지금 세대교체기를 맞았다. 1970~1990년대 설립된 상당수 회사의 창업주 나이가 60세를 훌쩍 넘어섰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인이 경영권과 가업 승계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세대교체를 둘러싼 여러 중소기업의 각기 다른 모습에는 우리 중소·중견기업이 처한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개인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2세 경영자 중에는 해외 유학파가 많다. 중소기업이라도 더 이상 국내에만 머물러선 생존할 수 없다는 창업 세대의 인식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딸이 경영에 참여하는 사례도 늘었다. 화학소재 중견그룹인 태경그룹(옛 송원그룹)의 김해련 대표는 2014년 아버지(김영환 창업주)가 별세하면서 가업을 이었다. 김 대표는 최근 일본에서 전량 수입하던 나노이산화티타늄이라는 화장품 원료를 국산화하고 전북 군산에 새 공장을 세웠다. 중화학 소재에서 뷰티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표면처리(도금)와 금형 등 뿌리산업은 물론이고 건설·제약·바이오·식품 등의 분야에서도 20~40대 여성 2세 기업인이 꽤 된다. 창업주인 아버지 밑에서 남매가 경쟁하는 사례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중견기업에서도 곧잘 볼 수 있다.

하지만 자식에게 제조업을 물려주기가 망설여진다는 중소기업인도 적지 않다. 평생 일군 회사를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일감은 줄어드는데 최저임금 인상과 각종 환경규제 강화로 경영 환경이 악화되고 있다고 중소기업인들은 꼬집는다. 회사를 팔거나 정리하고 싶어도 퇴직금 지급, 대출금 상환 등의 부담 때문에 쉽지 않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울며 겨자 먹기로 공장을 돌리는 중소기업인도 많다. 물론 산업단지마다 공장 매물은 수십 개씩 쌓여 있다.

경기 시흥의 한 플라스틱 사출 업체는 올해 창업주 아들이 유학을 마치고 입사했다. 수백억원 매출의 탄탄한 중소기업이지만 창업자는 걱정이 많다고 했다. 과거에는 대기업에서 일감을 받으면 해외에서 최신 설비를 들여온 뒤 생산단가를 낮춰 납품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최종 완성품과 납품처뿐만 아니라 관련 기술이 급변하고 있다. 중소기업도 글로벌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요즘은 사업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그런데 아들이 경영을 맡을 시대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됩니다.” 세대교체기를 맞은 중소기업 창업 세대의 고민이 묻어난다.

selenm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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