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정치 9단’으로 불리는 민주당 1인자 펠로시 의장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됐지만 펠로시 의장이 1주일째 상원에 넘겨주지 않고 있어서다. 펠로시 의장이 탄핵 의결안을 움켜쥐고 있는 것은 언제까지 상원에 넘겨야 한다는 법규가 없기 때문이다. 미 언론에선 ‘이러다 대선일인 내년 11월 3일까지 탄핵정국이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탄핵정국이 길어지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전혀 달가운 일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취재진에게 펠로시 의장을 겨냥해 “절망적”이라며 “그는 나라에 엄청난 해를 끼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에도 트윗을 통해 펠로시 의장과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를 싸잡아 거론하며 “급진좌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민주당은 미쳤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전날에도 트윗을 통해 “제정신이 아닌 펠로시가 상원 심판을 지연시킬 권리는 없다”며 “펠로시는 상원 탄핵 표결에서 ‘공화당 찬성 0표’(가 나오는 것)를 지연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색적 비난을 쏟아내는 건 탄핵정국이 마냥 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초 공화당은 하원이 상원으로 탄핵안을 넘기자마자 속전속결로 부결시킨다는 전략이었다. 탄핵안이 상원에서 가결되려면 재적의원 100명 중 3분의 2(67명)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현재 공화당이 53석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펠로시 의장의 ‘깜짝수’로 이런 전략이 깨졌다. 펠로시 의장은 지난 18일 하원의 탄핵안 가결 후에도 탄핵안을 상원에 넘기지 않고 있다. 공화당이 그동안 ‘속전속결로 부결시키겠다’고 공언한 걸 문제 삼아 공정한 심판이 보장될 때까진 탄핵안을 상원에 넘기지 않겠다고 버티기에 나선 것이다.
백악관도 아직까지는 다급하지 않은 분위기다. 공화당 지지층이 뭉치고 있어서다. 트럼프 대통령 탄핵안 가결 후 이틀 동안 후원금이 평소보다 훨씬 많은 1000만달러나 모였다. CBS는 “백악관이 탄핵안 제출 지연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언제까지 즐길 수만도 없다. 민주당의 버티기가 장기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CNN은 지난 21일 “펠로시는 필요하다면 내년 11월(대선)까지 기다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이에 대해 “우리는 막다른 골목에 와 있다. 하원의장이 서류를 넘겨주기 전까진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초조함을 드러냈다.
민주당이 내년 대선까지 탄핵안을 손에 쥐고 있긴 쉽지 않다. ‘헌법을 악용한다’는 비난 여론이 커질 수 있어서다. 하지만 상원 심판을 최대한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탄핵안 제출 시기를 저울질할 순 있다.
핵심 증인 소환을 위한 협상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은 상원 심판 때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대행 등 ‘핵심 증인’ 소환을 요구하고 있다. 하원 조사 때 트럼프 대통령 지시로 이들이 증언대에 서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당은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 사이가 틀어진 볼턴 전 보좌관 입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공화당은 이들의 증인 소환에 부정적이지만 하원으로부터 탄핵안을 넘겨받기 위해 일부 증인 채택을 수용할 수도 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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