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승규 한경대 석좌교수(전 농림수산식품부 차관·사진)는 지난 추석 연휴를 네덜란드 바헤닝언대 연구소에서 보냈다. ‘제2회 세계 농업 AI대회’ 예선전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이 대회는 바헤닝언대가 주최하고 중국 기업 텐센트가 후원했다. 자체 개발한 AI를 활용해 농사를 지은 뒤 그 농산물의 품질, 수확량 등을 바탕으로 각 팀 순위를 매긴다. 방울토마토가 재배 종목인 올해 대회 예선에는 세계 각국 21개 팀이 참가했다.
민 교수는 한국 대표팀 격인 디지로그팀 단장을 맡고 있다. 10개 기업·기관·대학에 소속된 14명의 연구원으로 이뤄진 일종의 ‘연합팀’이다. 시뮬레이션 결과를 놓고 평가받는 예선전에서 디지로그팀은 2위(사진 속 기념패)를 차지했다. 중국 농업과학원, 세계적 농업컨설팅회사로 꼽히는 델피, 글로벌 유리온실 제조사 판데르 후반, 유럽의 MIT로 불리는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소속 연구원들이 주축이 된 경쟁팀들보다 더 좋은 성적을 올렸다.
디지로그팀을 포함해 예선을 통과한 5개 팀은 내년 1월부터 6월까지 자신들이 개발한 AI를 활용해 유리온실에서 직접 방울토마토 농사를 짓는 본선 대회에서 실력을 겨룬다.
대부분 한 기업·기관 소속 연구원으로 구성된 경쟁팀과 달리 디지로그팀은 팀원을 모으는 과정부터 쉽지 않았다. 민 교수와 팀장인 서현권 동아대 교수가 여러 농업기업과 인공지능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한 명씩 전문가를 섭외했다. 민 교수는 “특히 AI 강화 학습 전문가를 섭외하는 게 어려웠다”며 “이 대회에 참가해 경험을 쌓아야 우리 농업을 바꿀 수 있다고 삼고초려했다”고 말했다.
민 교수는 ‘본선 우승’만이 출전 목적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한국 농업의 특성에 맞춘 AI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경험을 쌓는 게 진정한 참가 목적이다. 농업 선진국에서 개발하는 AI는 모두 자국 농업 환경에 최적화돼 있다. 시설원예농업이 강한 네덜란드에서 개발하는 농업 AI가 대규모 유리온실에서만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 교수는 새로운 시각으로 한국 농업의 혁신을 주도해온 인물로 꼽힌다. 2001년 삼성경제연구소 재직 시절부터 농민들에게 마케팅, 재무, 회계 지식을 가르치는 민간 농민교육기관인 한국벤처농업대를 설립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약 3000명의 농민 졸업생을 배출했다. 그는 “20년 전 벤처농업대 설립으로 혁신의 토대를 닦았다면 이제는 기술을 바탕으로 한국 농업이 뛰어오를 수 있게 하고 싶다”고 꿈을 밝혔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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