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난 왜 엄마랑 사이가 안좋을까"…상처받은 딸들에게 전하는 위로

입력 2019-12-26 18:59   수정 2019-12-27 00:53

한국 사회에선 친구처럼 뭐든 엄마와 공유하며 착 달라붙어 있는 딸이 좋은 딸로 비친다. 딸 입장에선 다를 수 있다. 가정을 꾸리거나 사회생활을 하는 딸들은 이런 역할을 잘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럴 때 “무심하다” “자기만 안다”와 같은 비난의 말을 듣기 일쑤다. 왜 딸에게만 이런 규범이 작용할까.

일본 여성 심리 전문가이자 모녀 관계 상담 전문가인 가토 이쓰코는 저서 《나는 나, 엄마는 엄마》를 통해 모녀의 본질에 대해 탐구한다. 저자는 ‘사이좋은 모녀’란 환상을 깨는 사례들을 제시하며 모녀 관계에서 개인의 심리가 사회적인 프레임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단지 딸의 개인적 입장을 대변하는 것을 넘어 사회심리학적 측면에서 ‘엄마는 대체 왜 그럴까?’에 대해 이해하고 앞으로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도 제시한다.

저자는 “자존감 부족이나 불안증으로 상담실을 찾는 여성들의 심리적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많은 경우 ‘모녀 갈등’이 있었다”며 “모녀 관계에서 권력자인 엄마는 딸과 달리 딸 때문에 상담실을 찾지 않는다는 점도 발견했다”고 말한다. 그는 먼저 결국 이런 점 때문에 행동하는 쪽은 딸이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엄마 때문에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바로 이어 들려주는 여섯 유형의 모녀 이야기도 흥미롭다. 딸에게 지나치게 의지하거나 간섭하는 엄마, 식사를 강요하는 엄마, 매사 지적하는 엄마 등이 사례로 언급된다. 이를 통해 대부분 딸과 갈등 상황에 있는 엄마들은 의도했든 아니든 딸을 심리적으로 통제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그런 엄마들의 심리 이면에 있는 또 다른 사정도 이야기한다. 식사 강요로 딸인 사토코를 힘들게 하는 엄마 게이코는 가부장적 시대 분위기 속에서 ‘음식’이라는 수단 외엔 자신을 표현할 방법이 없던 여성이었다. 저자는 “단순히 지나친 간섭처럼 보이는 엄마의 행동은 자신의 욕망과 사회적 요구를 교묘히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 다른 예로 여성스럽지 않은 옷차림이나 불친절한 태도를 지적하는 경우를 든다. 엄마가 평생에 걸쳐 확고하게 구축한 젠더 규범을 딸에게 학습시키는 식이다. 저자는 “딸로서는 엄마의 말 속에 숨어 있는 이런 사회적 메시지를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좀 더 냉정하게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책 후반부에서는 ‘정서적으로 단념하라’ ‘죄책감과 싸워라’ ‘엄마의 불행에 책임감을 느끼지 말아라’ 등 심리적 조언부터 ‘엄마와 함께하는 날 정하기’ ‘일관적으로 거절하기’ 등 행동 수칙까지 언젠가 엄마가 될 딸들을 위한 현실적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다양한 모녀 갈등을 사회심리적으로 분석해 ‘엄마를 통해 사회가 요구하는 것’ ‘엄마의 욕망과 딸인 자기 자신의 욕망을 좀 더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법’ 등을 알려준다. 저자는 “엄마와의 관계일지라도 ‘내 마음을 지키는 것이 먼저’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엄마를 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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