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들이 제대로 갖추어진 환경 속에서 다치지 않고 준비한 것들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길."
그룹 슈퍼주니어 은혁은 후배인 레드벨벳 웬디가 '2019 SBS 가요대전' 리허설 중 부상을 입자 이같은 말을 남겼다.
레드벨벳이 컴백한 지 이틀 만에 멤버 부상이라는 안타까운 일을 겪었다. 웬디는 지난 25일 진행된 '2019 SBS 가요대전' 리허설 도중 2m 상당의 리프트에 오르려다 낙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웬디는 이 사고로 얼굴 부위 부상과 오른쪽 골반 및 손목 골절 진단을 받았다. 현재 SBS 측은 정확한 사고 경위 파악을 위해 내부 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번 사고로 SBS의 시설 관리 및 위기 대처 능력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현장을 찾았던 팬들이 사고가 발생한 리프트가 전날 타 아티스트의 리허설 때부터 작동 오류 등의 말썽을 일으켰다는 목격담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위험 소지가 있는 무대 장치를 무리해서 사용한 것이 아니냐며 부실한 시설 관리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리허설 중 무대 장치와 관련한 문제 제기가 있을 시 현장에서는 실제적으로 어떠한 조치들이 이루어질까.
현직 무대감독에게 물어봤다. 무대감독 A씨는 "어느 문제인지에 따라 차이가 있다"면서 상황에 맞추어 제기된 문제점을 보완한다고 했다. 그는 "출연자들이 리프트가 안 보인다고 하면 그에 맞게 등을 달아주거나 아니면 형광 마킹이라도 한다. 흔들림이 있다고 할 때도 있는데 이는 유압장치의 특성상 완전히 개선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이러한 이유들로 리프트 장치 자체를 리허설 이후에 아예 빼는 경우는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이번 사고는 웬디가 2층 터널을 지나 무대로 이어지는 계단 형태의 리프트에 오르는 도중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리프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무대 간 이동 장치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웬디가 중심을 잃고 떨어졌다는 현장 스태프의 말을 빌린 보도도 있었다.
무대감독 A씨는 "아직 내부적으로 조사 중인 사안이지만 알려진 사실이 맞다면 리프트가 안 보인 것, 즉 출연진이 리프트가 올라오지 않은 걸 몰랐다는 게 제일 문제다. 단순히 마킹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만약 웬디가 정해진 시간과 동선에 맞게 등장한 상황에서 리프트가 올라오지 않은 것이고, 여기에 변동 없이 진행 사인이 있었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분초를 다투는 무대 위에서의 돌발 상황을 대처하는 데 있어 신속한 판단과 정확한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SBS는 공식 입장문을 통해 사고 발생 직후 제작진이 현장을 통제하고 119 신고를 통해 웬디를 병원으로 긴급 이송했다고 밝혔다. 또 사고와 관련해서는 정확한 진상 파악을 위해 내부 조사에 착수했으며, 철저한 원인 규명으로 향후에는 유사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사고 책임의 주체는 누가 되는 것일까. SBS 측 관계자는 한경닷컴에 "이번 행사의 무대 진행은 SBS 제작진과 외주 업체가 함께 작업한 것이다. 다양한 파트에서 양측이 함께 진행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누구의 책임이라고 구분하기가 애매한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내부 조사는 사고 직후부터 진행 중인 상태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많은 팬들은 SBS의 후속 대처에 비판을 쏟아냈다. 사고 경위나 자세한 설명 등이 빠진 첫 번째 사과문이 문제였다. 당일 SBS는 웬디의 부상으로 레드벨벳이 생방송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됐다며 시청자에 사과했다. 그러면서 "향후 SBS는 안전 관리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짧게 글을 마무리했다.
레드벨벳의 리허설은 이날 오전에 진행됐다. 입장문은 사고 이후 저녁 6시 11분께 올라왔다. 내부적인 조사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이라 할지라도 최소한 사고 당시 현장 상황에 대한 설명은 필요했지만 반나절이 넘어서야 나온 사과문은 단 3줄에 그쳤다.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겠다는 '안전 관리' 역시 어떤 방식인지 구체화된 것은 없었다.
연예인들의 무대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태연은 콘서트 도중 무대 장치에 머리를 부딪혔고, 현아는 지난 5월 빗물이 그대로 고인 무대에서 공연을 하다 미끄러져 부상을 입었다. 좋지 않은 무대 컨디션 속에서 공연을 마치면 '프로답다'라는 말을 내뱉는 이들이 있지만 이 또한 안전불감증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무대는 대부분 철제 구조물로 되어 있고, 주변도 상당히 어둡기 때문에 매번 위험하다고 느껴진다. 매니저나 경호원, 스태프들이 랜턴을 아무리 비춰도 한계가 있다. 언제든 주의하지 않으면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현장 관계자들은 사소한 위험 요소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어느 정도의 불편함에 대해서는 다들 눈치만 보는 게 사실이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공연 주관·주최 측 스태프들, 관객들까지 전체적으로 안전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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