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2015년 체결된 한·일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합의는 헌법소원 심판 대상이 아니라고 27일 판단했다. 한·일 관계 측면에서 최악의 시나리오였던 ‘위헌’ 판결을 피했다는 평가다.
외교가에선 “양국 관계 개선을 막는 부정적 변수 하나가 사라졌다”는 반응이 나왔다.
헌재가 판단한 각하 결정에는 위안부 합의 자체가 정치적 합의였다는 논리가 뒷받침됐다. 헌재는 “일반적인 조약이 서면 형식으로 체결되는 것과 달리 이 사건 합의는 구두 형식의 합의이고, 국무회의 심의나 국회의 동의 등 헌법상 조약 체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합의의 내용상 한·일 양국의 구체적인 권리·의무의 창설 여부가 불분명하다”고 했다. 즉 방향을 정한 것이지 구체적 계획이나 의무 이행의 방법과 시기, 불이행의 책임 등은 규정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위안부 합의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12월 28일 이뤄졌다. 당시 양국 외교부 장관은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타결됐다고 발표했다. 합의문에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를 위한 재단 설립 기금 10억엔(약 108억원)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됐음을 확인한다’는 문구도 포함됐다.
이 합의에 대해 위안부 피해자들을 대리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이듬해 3월 “정부가 일본의 법적 책임을 묻고자 하는 할머니들을 배제한 채 합의해 이들의 재산권과 알권리, 외교적 보호를 받을 권리 등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합의인 위안부 합의는 조약이 아니기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라고 보기 힘들며, 따라서 피해자들의 기본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보기는 곤란하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지난해 6월 헌재에 제출했다.
이번 판결로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배상 문제 등 과거사 문제로 갈등을 겪던 한·일 양국은 일단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사 문제에서 강경한 태도를 내세우던 문재인 정부의 기조에도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출범 후 “2015년 한·일 합의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진정한 해결이 될 수 없다”며 2015년 합의를 부정하는 듯한 견해를 보여왔다.
외교부 장관 직속의 태스크포스를 가동하고 합의 과정을 재검토해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 부족했다는 결론을 내놨고, 지난해에는 이미 일본이 출연한 10억엔으로 생존 피해자 총 47명 중 35명, 사망 피해자 199명 중 64명(유족 수령)에게 치유금으로 총 45억7000만원이 지급해온 화해·치유재단을 해산시켰다. 그간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이행하지 않는다”며 합의문 실천을 촉구해왔다.
다만 이번 ‘기각’ 결정이 위안부 합의에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선언한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갈등과 대립의 불씨가 남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무라 간 일본 고베대 교수는 “이번 헌재 판결은 위안부 합의의 법적 구속성을 부정함으로써 ‘사실상 무효’를 선언한 것”이라며 “한·일 청구권 협정과 마찬가지로 위안부 합의를 두고도 한·일 양측이 다르게 해석해 향후 갈등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임락근/신연수 기자/도쿄=김동욱 특파원 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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