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이해할 차례이다》(민음사)를 최근 출간한 권박 시인(36·사진)은 31일 시집에 실린 ‘여성 시’들의 공통점을 이렇게 말했다. 2012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한 권 시인은 “그동안 페미니즘 문학은 여성의 신체를 해체하거나 고통을 호소하는 방식이었다”며 “제 시를 통해 성폭력뿐 아니라 성차별과 억압적 시선들을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폭넓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권 시인은 시집에서 여성에게 침묵을 요구하고 제한된 역할만을 부여하는 사회에 속하길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돼지를 삼켰다 나는/옷걸이가 되었다가 의자가 되기도 하였지만/이번에는 여자로 태어났다’(‘구마조의 모자’ 중에서). 시인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이름 없는 여자들’을 호명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여성 작가의 시초는 ‘이름 없음’이나 남자 이름이었어요. 어린 시절 놀림받아 온 ‘민자’라는 이름을 바꾸려고만 했던 저는 결국 부모님의 성으로 새로운 이름을 만들었죠. 이름의 좋고 싫음이 아니라 진짜 여성 자신의 이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름이 없는 사람은 말이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편견이 대화를 거절한다면//편견은 편견이 없다는 편견에게/똑같은 방식으로, 삿대질하라고!’(‘마구마구 피뢰침’ 중에서), 시인은 이처럼 대립이나 충고 대신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대화를 강조한다.
“첫 시에서 ‘대화를 나눠줄래?’라고 직접적으로 얘기합니다. 남성들도 여성이 피해 보는 걸 알고 있음에도 이들이 징징거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제대로 대화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각자 격앙돼 있는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남녀 모두 ‘맞아, 우리 서로 그랬었지’라고 이해하게 하고 싶었어요.”
이번 시집의 ‘각주’는 여느 시집들보다 훨씬 길게 이어진다. 시 ‘마구마구 피뢰침’의 각주는 열두 쪽에 이른다. 아름답지만은 않은 초현실주의적인 시어를 통해 미처 말하지 못했던 실제 현실을 각주로 속속들이 드러낸다. 그는 “각주는 읽는 이에게 감정을 조절하고 숨을 고르며 차분히 대화를 유도하는 장치”라고 말했다.
시집의 또 다른 주제는 ‘죽음’이다. 권 시인은 “열다섯 살 때 동갑내기 사촌의 죽음을 경험한 뒤 ‘나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고민을 해왔다”며 “나 자신이 죽을 땐 그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궁금했다”고 말했다.
‘이해할 차례이다’라는 제목은 이런 생각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대화를 통해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이해하고, 죽음을 통해 인생을, 인생을 통해 죽음을 이해해보자는 것이다. “죽음을 통해 삶을 관통해보고 싶었어요. 여성들은 제 시를 읽고 동질감을 느끼고, 남성들은 제목처럼 제 시를 읽고 여성들을 이해해주면 좋겠어요.”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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