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미술계에 따르면 국내 양대 경매회사 서울옥션(823억원)과 K옥션(571억원)의 올해 미술경매에 1394억원(낙찰총액 기준)이 유입됐다. 작년(2000억원)보다 30% 줄어든 액수다. 서울옥션의 낙찰액은 작년(1286억원)보다 36% 급감했다. 지난해 낙찰총액 2000억원을 사상 처음 돌파하며 신기원을 열었던 미술품 경매시장 규모가 올해는 크리스티코리아의 한국 작품 낙찰액과 6개 군소 경매회사의 실적을 포함해도 1600억원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미술시장 전문가들은 “국세청이 미술품 양도차익에 매기는 세금을 기타소득 분리과세가 아니라 종합과세로 추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경매시장의 불안감을 키웠다”며 “국제 시장 안정세와 금리 인하로 풍부해진 유동성 덕분에 비교적 안전한 투자처로 평가받는 국내외 유명 화가 작품과 고미술품에는 그나마 저가 매수세가 몰렸다”고 분석했다.
김환기 ‘우주’ 132억…한국 미술 최고가
김환기의 작품이 줄줄이 낙찰되며 경매시장을 주도했다. 올해 ‘큰손’ 컬렉터들은 양대 경매회사에서 김환기 작품 58점을 사들이는 데 모두 248억원을 ‘베팅’했다. 크리스티코리아의 홍콩 거래액까지 합하면 380억원을 넘는다. 잠정 집계된 낙찰총액의 23%에 달한다. 그의 대표작 ‘우주(Universe 5-IV-71 200)’는 지난달 크리스티 경매에서 132억원에 낙찰돼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다시 썼다. ‘항아리와 날으는 새’(11억원), ‘야상곡(9억원), ‘정Ⅱ원-65’(7억원) 등 반추상화 작품들도 고가에 팔리며 미술시장의 ‘환기 천하’ 시대를 이어갔다.
박서보, 하종현, 윤형근 등 단색화가의 인기가 주춤한 가운데 박수근, 이우환, 유영국, 르네 마그리트, 마르크 샤갈, 클로드 모네 등 국내외 유명 구상작가의 작품에도 시장의 관심이 쏠렸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사이렌의 노래’는 72억4700만원에 낙찰돼 외국 그림으로는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샤갈의 ‘파리의 풍경’(38억원), 박수근의 ‘공기놀이하는 아이들’(23억원), 이우환의 ‘동풍’(20억7000만원), 유영국의 ‘작품’(7억7000만원) 등도 고가 그림에 이름을 올렸다.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은 “2015년 이후 화단을 지배한 단색화가 주춤하면서 시장의 관심이 국내외 유명 화가의 구상화로 옮겨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료 가치 높은 고미술품에 뭉칫돈
고서화, 서예, 공예품, 도자기 등 고미술품 거래도 시장의 활력소 역할을 했다. 서울옥션과 K옥션의 올해 경매에서 고미술품이 모두 215억원어치 팔려 나갔다. 서울옥션 경매에서는 고미술품 1531점 중 1199점이 팔려 낙찰률 78%(낙찰총액 159억원)의 이례적인 성과를 냈다. 고미술품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신기록도 쏟아졌다.
조선시대 백자대호(白磁大壺)는 국내 도자기 거래 사상 최고가인 31억원에 낙찰됐다. 정조의 화성행차를 묘사한 8폭 병풍 ‘화성능행도’ 역시 사료 가치를 인정받으며 30억원까지 뛰었다. 국내 경매회사가 거래한 고미술품 중 최근 3년간 30억원 이상에 팔린 작품이 한 점도 없는 것을 고려하면 양질의 고미술품이 시장에서 팔리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통한 중저가 미술품 거래는 뒷걸음질쳤다. 올해 서울옥션과 K옥션 온라인 경매에서 거래된 그림 판매액은 191억원으로 작년(239억원)보다 20% 줄었다. K아트 수출의 전초기지 역할을 해온 홍콩의 정세 불안은 서울옥션의 실적 부진을 가중시켰다.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공방으로 올해 초 시작된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홍콩법인의 세 차례 낙찰액은 작년(664억원)에 비해 36% 쪼그라든 423억원에 머물렀다.
미술시장 전문가들은 내년에 국세청의 미술품 양도세 과세 강화 방침이 현실화하면 시장 조정이 길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옥경 서울옥션 대표는 “미술품 양도차익의 사업소득 과세를 강행할 경우 미술계 후원자이자 버팀목인 개인 소장가들의 심리가 위축돼 시장의 존립 기반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웅철 한국화랑협회 회장은 “국회가 미술품 양도세 과세 규정을 완화하는 법안을 상정했지만 경기가 경착륙하면 미술시장이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신중한 투자를 당부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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