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경영진 회의가 소집됐다. 이 자리에서 구현모 당시 개인고객전략본부장은 “당장 전담부서를 구성해야 한다”며 그 자리에서 명단을 발표했다. “후발주자는 속도전으로 승부해야 한다”며 밀어붙였다. KT는 한 달 만에 LTE 서비스를 시작했다.
구현모 KT 차기 최고경영자(CEO) 내정자(55)가 그룹 안팎에서 ‘강한 추진력을 갖춘 최고 전략가’로 통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일화다. 첫 직장인 KT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32년 만에 CEO에 올라 ‘샐러리맨 신화’를 쓴 그는 KT그룹 내 사정에도 밝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구원으로 입사한 후 위기 대응 빛나
1964년생인 구 내정자는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경영과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7년 KT경제경영연구소 연구원으로 입사한 이후 32년 동안 KT에서만 근무했다. 경영전략 담당, 비서실장, 경영지원총괄 사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9년 KT 그룹전략1담당 상무보 시절에는 당시 최대 현안인 KT와 KTF의 합병을 주도했다. 지난해 11월부터는 커스터머&미디어 부문장을 맡았다. KT 핵심 사업인 유·무선 통신과 콘텐츠·미디어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KT는 올해 또 어려움을 겪었다. 유료방송 경쟁 업체인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가 잇달아 케이블TV업체인 CJ헬로(현재 LG헬로비전), 티브로드를 인수해 몸집을 불렸지만 KT는 정부 규제(유료방송 합산규제)에 막혀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난달 “우리만의 길을 가겠다”며 KT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즌’ 강화로 대응했다.
그는 ‘소통왕’으로도 통한다. 그룹 내 고위직에 있으면서도 소탈하고 권위에 얽매이지 않는 성격으로 직원들의 신망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부하 직원들과도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는 스타일이라는 것이 KT 관계자들의 말이다.
2년 만에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도
구 내정자는 2014년 황창규 회장 체제가 시작된 뒤 비서실장으로 발탁됐다. 이후 2014년 12월 부사장, 2017년 1월 사장으로 승진했다. 2년 만에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해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다.
황 회장 취임 이후 초고속 승진해 황 회장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일각에선 ‘낙하산 인사’가 ‘적폐 후계구도’로 바뀐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김종구 KT 이사회 의장은 “현재 CEO(황창규 회장)는 (구 내정자를 선정한) 이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고 부인했다.
지난 27일 이사회는 수차례 투표를 거쳐 구 내정자를 차기 CEO로 만장일치로 확정했다. 한 사외이사는 “첫 번째 투표에서 후보자 절반을 탈락시키고, 이후 투표를 통해 4명에서 3명, 3명에서 2명, 2명에서 최종 1명으로 좁혀나가는 방식으로 뽑았다”고 설명했다.
구 내정자는 1987년 KT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경영계 12위 그룹의 수장이 됐다. KT 관계자는 “구 내정자의 선출로 KT 모든 직원이 CEO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꾸게 됐다”며 “정부와 정치권에서 낙하산 인사를 보내기 어려운 지배구조의 틀을 닦은 것이 이번 인사의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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