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라임펀드, 美 폰지사기에 돈 다 날렸다

입력 2019-12-29 17:46   수정 2019-12-30 00:39


환매 중단된 라임자산운용의 무역금융펀드 개인투자자들이 2400억원대 투자 원금을 한 푼도 건지지 못할 위기에 놓였다. 라임 무역금융펀드의 투자 대상인 미국 헤지펀드가 미 금융당국으로부터 ‘폰지 사기’로 판명돼 자산 동결 조치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한국 금융당국은 라임 무역금융펀드에서도 비슷한 수법의 폰지 사기 혐의를 확인하고 내년 초 고강도 제재 조치를 내놓을 예정이다.

본지 11월 8일자 A1, 3면 참조

29일 한·미 금융당국에 따르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최근 글로벌 무역금융 전문 투자회사인 IIG의 등록을 취소하고, 관련 펀드 자산을 동결하는 긴급 조치를 단행했다. 뉴욕에 본사를 둔 IIG는 무역금융 전문 투자자문사로 라임 펀드가 투자한 헤지펀드(STFF)를 운용하고 있다. 국내 1위 사모펀드 운용사인 라임은 개인고객 투자금(2436억원)과 신한금융투자에서 받은 대출금(3500억여원) 등을 합쳐 6000억원가량의 무역금융펀드를 운용했다. 이 가운데 40%를 미국 헤지펀드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SEC 조사를 통해 IIG 헤지펀드는 이미 작년 말 투자자산이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태가 됐는데도 이를 속인 채 ‘가짜 대출채권’을 판매한 혐의가 드러나 기소됐다. 또 기존 고객 환매가 들어오면 신규로 받은 투자금으로 돌려막는 일종의 ‘다단계’ 수법을 써온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라임 펀드는 손실이 나면 일반 투자자가 우선적으로 떠안는 구조여서 개인들은 투자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라임운용 역시 미국 헤지펀드의 부실을 알고도 이를 국내 투자자에게 숨긴 채 IIG와 비슷하게 펀드 장부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투자자를 모았다고 판단, 조사가 끝나는 대로 중징계 조치를 내릴 예정이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美펀드 '돌려막기 사기'에 당한 라임
국내 투자자도 똑같이 속였다


라임자산운용이 지난 10월 2차 환매 중단을 선언한 무역금융펀드가 국제적인 금융 사기에까지 휘말린 것으로 나타났다. 라임이 고객 자산으로 투자한 미국 헤지펀드는 미 금융당국으로부터 ‘폰지 사기’로 판명됐다. 투자 자산은 전면 동결 조치됐고, 국내 개인투자자는 원금을 한푼도 못 건질 위기에 처했다.

더구나 펀드 운용·관리를 맡았던 라임과 신한금융투자는 이런 사실을 알고도 투자자에게 숨긴 것으로 알려져 ‘모럴 해저드’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국내 금융당국 조사 결과 이들은 손실 상각을 하기는커녕 펀드 기준가를 높게 조작하면서 우리은행 등을 통해 10월 환매 중단 직전까지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헤지펀드-라임 ‘폰지 사기’ 닮은꼴

29일 한·미 금융당국에 따르면 라임의 무역금융펀드(플루토-TF 1호)에 이상징후가 포착된 건 지난해 11월이었다. 이 펀드가 투자하는 글로벌 무역금융 헤지펀드 네 곳 가운데 미국 IIG(the International Investment Group)는 당시 IIG STFF 펀드의 환매 중단과 함께 기준가를 산출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아르헨티나 등 남미 지역 무역금융 대출채권의 디폴트(채무불이행)가 속출한 가운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폰지 사기 조사를 받고 있던 시기였다.

SEC 조사 결과에 따르면 IIG의 폰지 사기는 대담한 수법으로 10년 이상 지속됐다. IIG는 2007년 대표 헤지펀드인 TOF의 손실을 숨기기 위해 디폴트가 발생한 무역금융 대출채권이 정상적으로 회수된 것처럼 장부를 조작했다. 또 존재하지 않는 가짜 대출채권을 허위로 편입시켰다. 2013년 유동성 위기가 오자 도이체방크 주선으로 2억2200만달러 규모의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을 조성해 폰지 사기에 동원했다. 라임 무역금융펀드가 편입한 헤지펀드(STFF)도 CLO 만기가 다가오자 가짜 매출채권을 떠넘기기 위해 2017년 조성한 펀드다. STFF 펀드는 라임 무역금융펀드의 투자 비중이 40%로 가장 크다.

하지만 라임운용 등은 IIG의 폰지 사기 행각을 답습한 것처럼 국내 라임 무역금융펀드 투자자를 속였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펀드 손실을 감추기 위해 장부를 조작한 뒤 기존 투자자 상환금을 신규 유치한 투자금으로 메꾼 것으로 드러났다.

“부실 펀드 숨기고 수익률 손대”

라임 무역금융펀드는 2017년 사실상 신한금투 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PBS)본부에서 기획한 상품이다. 금융감독원은 신한금투 PBS 담당자들이 라임운용 담당자와 공모해 무역금융펀드 기준가에 손대는 방식으로 수익률을 조작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당국 관계자는 “해외 운용사로부터 받은 1차 데이터를 수탁회사에 전달하기 전까지 PBS에서 조작할 수 있는 구멍이 있었다”며 “편입 펀드 부실 사태에 대한 현지 실사와 같은 대응 조치를 취하지 않고 펀드 기준가를 조작해 라임의 신규 투자자 유치를 지원했다”고 말했다.

라임운용은 10월 중순 환매 중단 직후 한 기자간담회에서 무역금융펀드가 2017년 11월 설정 이후 17.8%의 수익을 내고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기준가 조작에 따라 장부상 이익을 내고 있을 뿐 사실상 손실을 내고 있었다.

펀드 손실 40%면 개인 투자금 다 날려

투자자는 이런 상황을 알 턱이 없었다. 우리은행 등은 라임 무역금융펀드의 안정적인 수익률을 앞세워 개인 큰손들에게 경쟁적으로 팔았다. 주로 만기 6개월 내지 환매 가능한 개방형으로 팔려나갔다. 기존 투자자에게 신규 투자자금으로 연 5~7% 안팎 수익을 더해 상환하면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환매가 묶인 무역금융펀드 개인투자액은 2436억원 규모다. 여기에 신한금투의 대출 금액인 3500억원을 합쳐 총 6000억원가량이 투자됐다. 라임 펀드는 손실이 나면 일반 투자자가 우선적으로 떠안도록 설계돼 있다. 따라서 전체 손실이 40% 수준이면 개인들은 한푼도 못 건지게 된다.

라임운용은 싱가포르 R사와 재구조화 계약을 통해 투자자 손실을 2024년까지 이연시켰다고 발표했지만 IIG 자산 동결로 실효성이 매우 적은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라임 사태는 단순한 자본시장법 위반이 아니라 금융 제도권에서 벌어진 희대의 사기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조만간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한금투는 “PBS 사업자로서 라임의 운용지시를 따랐을 뿐 상품의 기준가 변경 등에 주도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며 “IIG 펀드의 폰지 사기 등으로 인해 신한금투도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 폰지(ponzi)사기

나중에 투자한 사람의 돈으로 먼저 투자한 사람에게 수익을 지급하는 방식의 다단계 금융사기 수법.

■ 무역금융펀드

해외 무역 거래에서 발생하는 각종 선결제, 운임, 원자재 구매 및 가공 비용 등에 필요한 단기 자금을 빌려주고 이자수익을 올리는 구조의 펀드. 라임운용은 남미 지역 무역금융 대출채권을 집중 편입하는 글로벌 무역금융 헤지펀드들에 투자하는 재간접 펀드를 운용하다 환매 중단 사태를 겪고 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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