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게임업체들이 올해 한국에서 약 2조원에 이르는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정부가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빌미로 자국 내 한국산 신규 게임의 유통을 막아놓은 사이 올린 실적이다.
30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중국 시청각디지털출판협회 게임위원회(GPC)는 최근 내놓은 ‘2019년 중국 게임산업 보고서’를 통해 자국 게임산업의 올해 해외 매출을 115억9000만달러(약 13조4049억원)로 추산했다. 이는 1년 전보다 21.0% 증가한 규모다.
GPC가 이번에 처음 공개한 국가별 수출 비중을 보면 한국은 14.3%에 달했다. 미국(30.9%) 일본(22.4%)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수출시장이다. 금액 기준으로는 중국 게임업체들이 한국에서 16억5737만달러(약 1조916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반면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대(對)중화권(중국 대만 홍콩) 수출액이 2017년 35억8340만달러(약 4조1470억원)에서 2018년 32억1384만달러(약 3조7193억원)로 4277만달러(약 495억원) 감소했다고 집계했다. 사상 처음으로 줄어든 것이다.
한국 업체들의 올해 전체 중국 수출액은 감소세가 더 가팔라졌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국내 1위 넥슨은 올 3분기 중국 수출액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43.0% 감소했다고 밝혔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회장(중앙대 경영학과 교수)은 “중국 정부가 한국의 사드 배치 등을 이유로 2017년 3월부터 자국 내 한국산 신규 게임의 유통을 허용하지 않은 탓이 크다”고 분석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중국 게임 한국시장 잠식 와중에…
韓 배틀그라운드가 자국 게임이라는 中 정부
중국 정부가 한국 게임업체의 글로벌 흥행작 ‘펍지 모바일’(한국 출시명은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을 자국 게임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이유로 한국 신규 게임의 자국 내 유통을 3년째 막은 채 한국 게임을 자국 게임으로 둔갑시키는 행태도 서슴지 않고 있다.
“펍지 모바일이 수출 견인”
중국 시청각디지털출판협회 게임위원회(GPC)는 지난 20일 내놓은 ‘2019년 중국 게임산업 보고서’에서 모바일 게임 ‘펍지 모바일(PUBG MOBILE)’의 흥행을 중국 게임의 수출 증가 요인으로 꼽았다. 중국 정부 산하 기관인 GPC는 중국 내 게임 출시에 필요한 유통 허가권인 ‘판호(출판번호)’의 발급을 관리하는 등 중국 게임산업을 총괄하고 있다.
GPC는 이번 게임산업 보고서에서 “국내(중국) 게임 회사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펍지 모바일은 유럽과 미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하는 등 수백 개 국가에서 다운로드 순위 1위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펍지 모바일은 글로벌 출시 1년8개월 만에 누적 다운로드 6억 건을 돌파했다.
그러나 펍지 모바일은 국내 게임업체 크래프톤(옛 블루홀)의 자회사 펍지가 개발한 게임이다. 2017년 출시돼 지금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PC 게임 ‘배틀그라운드’를 모바일 버전으로 옮긴 것이다. 다만 모바일 게임으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중국 게임업체 텐센트가 참여했다. 일본을 제외한 해외 유통도 텐센트가 맡고 있다.
이를 근거로 GPC는 펍지 모바일이 텐센트 게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텐센트가 게임 개발과 유통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게임 성공의 핵심은 펍지가 창조한 게임 지식재산권(IP)”이라고 말했다.
커지는 텐센트 영향력
펍지는 이 같은 중국 정부의 주장에도 말을 아꼈다. 펍지 관계자는 “펍지 모바일은 텐센트와 공동 개발한 게임”이라며 “그 이상은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다.
텐센트가 엮인 펍지 모바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텐센트는 지난 5월 펍지 모바일의 중국 내 서비스를 돌연 중단했다. 대신 텐센트는 자사가 개발한 유사 모바일 게임인 ‘허핑징잉(和平精英)’을 유통했다. 심지어 이용자가 기존 펍지 모바일을 업데이트하면 허핑징잉으로 바뀌도록 해놨다. 기존 펍지 모바일 이용자 정보도 그대로 옮겼다.
당시 펍지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정보기술(IT)업계에서는 텐센트가 펍지의 모회사 크래프톤의 2대 주주(지분율 13.3%)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텐센트가 한국 게임 덕분에 매출 기준 세계 최대 게임사로 올라섰다는 분석도 있다. 텐센트 역시 중국의 다른 게임사처럼 2000년대 중반까지 한국 게임을 중국에 유통하면서 성장했다. 한국 게임 ‘크로스파이어’ ‘던전앤파이터’ 등으로 매년 수조원씩 벌어들였다.
텐센트는 한국 게임 유통으로 확보한 자금을 기반 삼아 해외 대형 게임사를 잇따라 인수하고 게임 개발력을 높였다. 텐센트가 주도하고 있는 중국 게임산업의 수출액은 올해 115억9000만달러(약 13조4049억원)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100억달러를 돌파했다.
한국 게임산업은 ‘비틀’
중국 정부의 규제와 텐센트의 영향 탓에 한국 게임산업은 비틀거리고 있다. 수출액이 2014년 중국에 추월당했다. 2017년에는 그 차이가 두 배 이상으로 벌어졌다. 한때 20% 이상 기록했던 연평균 성장률이 5%대로 주저앉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올해 국내 게임시장 규모를 15조172억원으로 추정했다. 1년 전보다 5.1% 늘어난 규모다. 2017년 20.6%였던 성장률이 2년 만에 4분의 1로 떨어졌다. 신작 게임 출시 지연, 해외 게임 공세, 수출 여건 악화 등의 요인이 맞물리면서 성장세가 꺾였다.
한국의 신규 게임이 중국에 팔리지 못하는 동안 중국 신규 게임은 200개 이상 한국에 유통됐다. 국내 모바일 게임 매출 상위 50위(30일 구글플레이 기준) 중 12개가 2017년 3월 사드 배치 논란이 시작된 이후 한국에 수출된 중국 게임이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회장(중앙대 경영학과 교수)은 “글로벌 최대 게임시장인 중국에서 중국 정부가 한국 게임만 차별하고 있는데도 한국 정부는 문제 제기조차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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