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유차의 운명은 어디로

입력 2019-12-30 15:01   수정 2019-12-30 15:02

새 경유차를 산다. 그리고 10년 뒤 해당 차량은 배출가스를 과도하게 내뿜는 노후 경유차로 분류된다. 저감장치 부착 및 조기 폐차를 종용받는다. 이때 정부는 보조금을 주면서 새 차 교환을 유도한다. 폐차 후 소비자는 다시 경유차를 산다. 다시 10년 뒤 새 차는 노후 경유차가 되고 운행이 제한된다. 반복되는 경유차의 운명이다.

수도권대기환경개선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노후 경유차 배출가스 저감사업이 시작된 것은 2005년이다. 이후 2013년까지 관련 정책에 투입된 세금만 1조876억원에 달한다. 매년 적지 않은 예산이 배정돼 지금까지 쏟아부은 돈은 어느덧 2조원을 넘겼다. 내년에도 6027억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연간 30만 대의 노후 경유차에 저감장치를 부착하고 2022년까지 136만 대의 노후 경유차를 없애는 게 목표다. 경유차 운행이 미세먼지에 큰 영향을 준다는 환경적 판단이 작용한 결과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돈을 들인 만큼 대기 질이 개선됐을까.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13만368대의 저감 조치를 통해 줄인 초미세먼지(PM 2.5)는 2085t이다. 연간 경유차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 3만3698t(2015년 기준)의 6.2% 정도다. 이 숫자를 두고 ‘효과가 있다’는 견해와 없다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대기 질을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미세먼지 원인으로 지목된 질소산화물이 감소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온실가스로 분류되는 이산화탄소는 오히려 늘었다. 운행이 억제돼 휘발유 및 액화석유가스(LPG) 연료에 대한 주목도가 커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미세먼지를 줄이자니 지구가 뜨거워지고, 이를 방지하려니 미세먼지가 늘어나는 구도다. 그래서 배출가스 저감은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 두 가지를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산화탄소 증가에 대한 우려는 제기된 지 오래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는 최근 경유차 대상의 수요 억제 정책이 휘발유차 수요를 늘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오히려 증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유로7 규제 도입을 촉구하면서 경유차를 없애기보다 두 가지 오염물질의 균형 감축을 이뤄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는 경유차의 배출가스 저감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바탕이 됐다.

대표적인 감축 기술은 ‘트윈 도징 시스템’이다. 배기가스 온도를 낮춰 질소산화물을 한번 더 줄이는 방식이다. 배출량만 보면 이전 대비 20% 수준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해당 시스템을 개발한 곳이 ‘디젤게이트’로 몸살을 앓았던 폭스바겐이다. 자체 시험 결과 고속도로 등에서 고속 주행을 하거나 높은 엔진 회전수로 장시간 운전할 때, 짐을 가득 실은 상태로 오르막을 오를 때도 일정한 효율과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이미 신형 파사트 2.0 TDI 에보에 처음 적용됐고, 앞으로 모든 제품에 순차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배터리 전기차에 매진하면서도 경유차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셈이다. 게다가 배터리 전기차가 보조금 없이 수익을 내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한 만큼 기존 내연동력을 섣불리 포기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이다. 결국 움직이는 이동수단의 동력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는 것 같지만 현실의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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