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月은 ‘그것만이 내 세상’ 형제가 맞붙은 달
|백두산 폭발을 막아라…‘백두산’서 리준평 役 맡은 이병헌
|사람답게만 살자…‘시동’서 택일 役 맡은 박정민
|이병헌·박정민 “믿고 보는 배우로 오래가고 싶어”
[김영재 기자] 동족(?) 상잔의 비극이다. 지난해 1월 새해 첫 웃음과 감동으로 ‘슬리퍼 히트’를 기록한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의 두 주역, 배우 이병헌(49)·박정민(32)이 이번에는 각각 ‘백두산(감독 이해준, 김병서)’ ‘시동(감독 최정열)’으로 한판 거하게 붙었다.
어느 날 서번트 증후군 동생을 맡게 된 한물간 복서를 연기한 이병헌은 ‘백두산’에서 북한 무력부 소속 일급 자원 리준평 역을 맡았다. 한반도 절멸을 막으려면 의뭉스럽더라도 그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피아노에 천재적 재능을 지닌 동생 진태를 연기한 박정민은 ‘시동’을 통해 어설픈 반항아 택일을 그려 냈다. ‘하고 싶은 대로 살되 대신 사람답게 살자’를 일깨우는 이다. 금일(31일) 기준, 현재 두 작품은 흥행을 향해 나란히 항해 중이다.
홍보에 여념이 없는 두 배우를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2길 한 카페에서 따로 만났다.(박정민과의 인터뷰는 13일에, 이병헌과의 인터뷰는 20일에 이루어졌다. 이 기사는 별개의 인터뷰에서 공통 질문을 선별, 하나로 묶은 기사다. -편집자 주-)
피 튀기는 경쟁을 앞두고 어제의 형 이병헌과 어떤 연락을 나눴냐는 질문에 박정민은 “아직 말씀을 주고받은 것은 없다”며, “내가 먼저 연락 드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답했다. 그로부터 딱 일주일 뒤. 박정민이 이병헌을 언급한 그곳서 이제는 이병헌이 박정민과의 일화를 꺼냈다. “얼마 전 박정민 씨에게 문자가 왔어요. 이번 경쟁에 대해서요. 근데 경쟁작으로 다시 만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렇게 오랜만에 서로 안부를 나눴죠.” 2018년의 형제는 2019년의 적이자 미래의 동료로 12월을 맞이하고 있었다.
―출연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병헌: “우리가 늘 지나다니는 강남역 주변이 무너져 내리잖아요. 백두산 천지에서는 용암이 뿜어져 나오고요. 그 스케일 큰 비주얼에 버디 무비 요소를 더한 것이 독특하게 느껴졌어요. 그것이 제일 큰 출연 이유입니다. 스토리가 전형적이라는 말이 많은데, 사실 ‘재난 오락 영화’인 이상 이야기가 간파당하는 약점은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해요. 대신 이런 영화에는 비주얼과 재미가 있죠. 여기서 재미라는 것은 유머와 감동이고 상업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그 두 가지가 아닌가 싶어요.”
박정민: “제가 이 영화에서 느낀 바가 있다면 그건 ‘네가 뭘 하든 괜찮아’예요. 지금껏 살아 온 인생이 크게 잘못된 게 아니라고 얘기해 주는 듯해서 그 점이 전 좋더라고요. ‘인생은 어떤 거야’라는 훈화를 안 해서 그것도 좋았고요. 고3 수험생을 위한 영화는 아니에요. 해답을 안기는 영화는 아닙니다. 그냥 머리 식힐 겸 보면 좋은 영화예요.”
―한 명은 속 모를 북 요원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에 화가 많은 반항아예요.
이병헌: “준평은 그 자신을 남에게 안 보여 주는 사람이에요.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날카롭고 날 선 사람인가 싶은데 또 어떤 때는 인간적인. 하지만 관객 분들 앞에서는 대체 리준평이 누구인지 들켜야 하는 순간이 군데군데 있어요. 그렇기에 보시는 입장에서는 잠깐씩 나오는 그의 전사에 더 훅 빠질 수밖에 없고요. 자꾸만 감추려 하니까 ‘저 사람 대체 뭐지?’ 싶다가 그가 마음을 여는 순간에 훅 감정 이입이 되는 거죠.”
박정민: “택일은 아무 생각 없는 친구예요. 결핍 탓에 온갖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채 그대로 쌓여 있는 인물이고요. 마지막에 가서는 뭐가 좀 변한 거 같긴 해요. 근데 제 생각에는 며칠 있다가 또 오토바이 타고 그냥 그러고 다닐 거 같아요. 그 편이 더 현실적이고요. 갑자기 검정고시 보고 대학 가고 반듯하게 살고 그러진 않을 거 같아요.”
―상대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이병헌: “이번이 첫 호흡이긴 해도 하정우 씨와 저는 사석에서 자주 만나곤 해서 성격이 어떤지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어요. 하정우 특유의 재치는 우리 모두 다 아는 거고요. 기대한 대로 대사를 맛깔나게 잘 소화해 내더라고요. 에피소드요? 잠깐이라도 시간이 나면 밖에 나가 걷거나 뛰는 게 특이했어요. 그 친구 땀은 대부분 자연 땀이었죠.”
박정민: “아주 오래 전에 (정)해인이랑 통화했던 적이 있어요. 아직 아무도 정해인이라는 배우를 모를 때. 아는 동생이 해인이 친구였는데, 그 친구 전화로 ‘파수꾼’ 잘 봤다며 꼭 한번 만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고마웠죠. 저도 그때 아무 것도 아니었거든요. 근데 그런 이야기를 해 주니까 고마워서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어요. 그때 해인이가 말한 그 꼭 한번이 ‘시동’으로 이루어진 셈이죠. 현장 분위기는 늘 좋았어요. 해인이가 제가 현장을 애드립으로 풍성하게 만들었다고 칭찬하던데, 그건 아니에요. 해인이가 다음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대사를 해야 하는 어떤 책임이 있었고 그 말을 채우려다 보니 아마 그렇게 느낀 듯해요. 저도 모자라요. 제가 어떻게 풍성하게 만들겠어요. 그건 감독님 몫이죠.”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을 보면 배우 까뜨린느 드뇌브가 연기한 극중 주인공이 다음을 질문 받아요. “당신은 어떤 배우를 계승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과연 이병헌 씨는 그 질문에 어떤 대답을 남길까요? ‘시동’에서 택일은 꿈이 뭐냐는 질문에 아직 생각해 본 적 없다고 답해요. 요즘 그 대답이 유행인 듯해요. tvN ‘일로 만난 사이’에서도 배우 김원희 씨가 같은 대답을 남겼고요. 그와 같은 맥락에서 배우 박정민의 현재 목표는 뭘까요?
이병헌: “저는 사실 ‘나는 어떻게 나이 들고 또 어떤 나이든 배우가 될까?’의 답이 더 궁금해요. ‘과연 어떤 배우처럼 될까?’라는 생각은 잘 안 들더라고요. (기자-혹시 ‘내가 언제까지 한국 영화계에서 주연 배우로 활약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같이 하나요?) 여전히 보고 싶은 배우로 되도록 오래가고 싶다는 게 제 바람이에요. 근데 말이 쉽지 그 말을 이루는 건 정말 힘든 일이죠. 누구나 인생에는 곡선이 있어요. 상승 곡선이 얼마나 길게 이어지냐 하강 곡선이 얼마나 급격하게 떨어지냐의 문제일 뿐이죠. (기자-행복한 입장이라고 생각해요. 김은숙 작가와의 협업도 그렇고 그 모든 것이 톱스타라 가능한 일이잖아요.) 맞는 이야기예요. 제가 어떤 작품에 출연한다는 소식에 여전히 기대가 쏟아지는 광경을 보면 ‘아 내가 아직 요 선상에 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그것에 감사를 느끼곤 합니다.”
박정민: “이 일을 오래하고 싶어요. 미래에 ‘저 친구는 제 몫을 다하는 친구’라는 평을 듣는 배우가 되고 싶고요. 저 박정민이라는 배우에게는 그게 지금의 화두예요.”
▶마지막 폭발을 막아야 한다…‘백두산’
백두산 폭발을 덱스터스튜디오의 힘을 빌려 구현해 낸 영화다. 민족 영산 백두산이 폭발한다는 설정과 그것의 구현은 관객이 영화관으로 발을 옮기게 하는 가장 큰 힘이다. 컴퓨터 바깥에서도 수고가 많았다. 제작진은 잠수교 로케이션 촬영부터 춘천 대규모 오픈 세트 제작까지 분주히 움직이며 화면에 현실성을 부여했다. 이병헌 외에도 배우 하정우·마동석·전혜진·배수지 등이 열심히 재난에 맞섰다. 영화 ‘김씨 표류기’ ‘나의 독재자’ 등을 만든 이해준 감독과 ‘감시자들’ 김병서 감독이 공동 연출을 맡았다. 12세 관람가. 128분.
▶재미와 감동이 부릉부릉…‘시동’
조금산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두 반항아 택일과 상필(정해인)이 사회로 나와 진짜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을 호연에 힘입어 유쾌하게 그려 냈다. 박정민은 샛노란 머리와 반항아보다 더 반항아 같은 연기로 이야기에 생동감을 더했고, 뿐만 아니라 그간 멜로 연기로 주목받아 온 정해인의 변신이 화제다. 택일을 어른의 길로 인도하는 거석이형 역은 배우 마동석이 맡았다. 머리(단발머리)부터 시선을 강탈하는 그의 존재는 이 영화의 보석이고 보배다. 비록 작은 역이지만 출연을 마다하지 않은 염정아에게는 주목과 박수가 동시에 필요하다. 어쩌면 ‘시동’은 모자의 화해를 다루는 일종의 청춘물이기 때문. 영화 ‘글로리데이’를 연출한 최정열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15세 관람가. 102분.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NEW, BH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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