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백두산'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지난 12월 19일 개봉 이후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백두산'은 새해까지 흥행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개봉 13일 만에 600만 관객을 동원하며 독주를 이어가고 있다.
'백두산'의 인기를 분석할 때 빠지지 않는 게 이병헌이다. 이병헌은 백두산 폭발을 막기 위한 작전의 키를 가진 북한 무력부 소속 일급 자원 리준평 역을 연기했다. 극 초반 신들린 러시아어 연기에 전라도 사투리로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고, 이후 이북 사투리와 중국어에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까지 선보인다.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이하는 이병헌도 '백두산'에 대해선 "조마조마한 도전이었다"며 쉽지 않은 작업과정이었음을 털어 놓았다.
"'백두산'은 볼거리가 풍성한 재난 영화에 버디무비(두 명의 남자배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 같은 부분도 있어서 차별화가 될 거 같았어요. 하정우 씨와 케미가 잘 맞으면 재밌겠다는 생각에 출연을 결정했죠. 그런데 찍으면서도 이게 어떻게 나올지 상상이 안되는 거에요. 배경이 중요한 영화인데 그게 다 CG니까요. 특히 제 촬영은 세트 아니면 허허벌판이라, 더 예측이 안 됐죠. 대사로는 '저기 봐라'라고 하는데, 아무 것도 없고요.(웃음)"
베일을 벗은 '백두산'은 빼어난 CG로 찬사를 받고 있다. 여기에 이병헌, 하정우의 호흡이 극을 이끌며 안정적인 재미를 연출했다는 평이다. 이병헌이 예측이 그대로 맞아떨어진 것.
그럼에도 이병헌은 함께 연기한 배우들에게 공을 돌리며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특히 아내 역으로 깜짝 출연한 전도연에게는 "저도 촬영 며칠 전까지 알지 못했다"면서 "정말 좋은 배우가 카메오로 출연해 줘 놀라웠고, 배우가 너무 세니까 그 장면에 관객들이 감정을 몰입하는데 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면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함께 주역으로 활약한 하정우와도 '티키타카'를 선보였다. 실제로 이병헌과 하정우는 9살이나 나이 차이가 나지만 '백두산'에서는 그런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백두산' 프로모션을 진행하면서도 하정우는 이병헌에 대해 "악마라는 별명을 지어주고 싶다", "먹방 유튜버 애청자다" 등의 폭로를 하면서 스스럼 없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병헌은 "(하정우식) 유머가 재밌는 거 같다"며 "(하정우가) 저에게 '아재 유머'라고 하는데, 언젠가 통할 유머라고 생각한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30년의 연기 생활을 하면서 안해 본 역할이 없었던 이병헌이었다. 아시아를 넘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도 일찌감치 주연으로 참여하며 독보적인 필모그라피를 쌓아왔다. 액션과 멜로, 코미디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것은 물론 미국 뉴스 전문 채널 CNN과 영어로 인터뷰를 진행할 만큼 탁월한 언어 감각을 자랑했던 이병헌이었다. 그런 그에게도 북한 사투리는 '백두산'이 처음이었다.
이병헌은 "리준평의 주 말투는 북한 사투리인데, 북한 사투리가 처음이긴 했지만 더 힘들었던 건 다른 부분이었다"고 고백했다.
"사투리는 우리 말이니까 억양과 리듬에 법칙이 있는 거 같더라고요. 러시아 대사 분량은 많지 않았지만, 중국어는 분량도 많고 억양도 생소해서 힘들었어요. 그런데 그것보다 '소리'에 대한 스트레스가 컸어요. 총격신이나 폭발 장면 등을 찍을 때 그 소리는 영화관에서 듣는 것과 달라요. 총알이 제 옆에서 터지는 걸 아니까, 멋있게 '딱' 해야 하는데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어서 눈이 작아지고요.(웃음)"
이번 촬영을 하면서 손이 찢어지는 부상도 당했다. 남한의 특전사 EOD 대원들이 북한의 핵 무기창고에서 핵을 분리할 때, 문이 닫히지 않도록 원통을 돌리는 장면을 찍으면서 밖으로 나와 있던 나사에 손이 걸린 것.
부상으로 손에 살색 밴드를 붙이고 촬영을 이어가면서도 "액션 연기는 어렵지 않았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5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탄탄하고 날렵한 액션을 보여주는 비법을 물어도 "하루에 세 끼를 먹는 것 외에 체력 관리를 하는 것도 없다"며 "몸에 좋은 것도 먹고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며 타고난 배우의 면모를 뽐냈다.
하지만 이병헌이 멋있는 연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웃기는 장면은 더욱 뻔뻔하게 연기해 폭소를 자아내는 이병헌의 진가는 '백두산'에서도 드러났다.
영화 '광해'와 '내부자들'에서도 등장했던 용변보는 장면이 '백두산'에서도 선보여진다. 이병헌은 "용변 보는 장면이 나온 영화들이 다 잘됐다고, 이번에도 관심을 가져 주셨다"면서 "(차기작인) '남산의 부장들'에선 대본에 없었는데, 지금와서 생각하면 왜 안했는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연기와 작품에 대해선 한없이 당당하고 여유가 넘치던 이병헌이었지만 '아이'와 관련된 질문엔 답변을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온라인에서 궁금증을 자아냈던 아들의 외모에 대해 묻자 "소문이 점점 커지는 것"이라며 쑥스러워 하며 "외적인 부분은 제가 어릴 때와 많이 닮은 거 같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결혼을 하고 아이와 함께하면서 경험하는 감정들이 연기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싱글이고, 자식이 없는 배우가 연기를 한다면 상상력에 맡겨야 하는 부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전 조건만 조금 변경해서 연기할 수 있으니까요."
데뷔 때부터 스타였고, 30년이 지난 현재엔 이병헌은 이름만으로 신뢰감을 주는 배우로 자리잡았다. 영화는 이병헌의 캐스팅만으로 "투자"가 되고, 드라마는 "편성"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이병헌은 계속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얼마 전부터 SNS도 개설해 직접 운영하며 팬들과도 직접 소통하고 있다.
"제가 어떤 작품을 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때까진 계속하고 싶어요. 그걸 유지하며 배우로 살아가는 게 힘든 거 같아요. 자칫 잘못하면 관객, 시청자들의 반응을 모르고 넘어갈 수 있고요. 그래서 SNS도 시작했어요. 미국 활동을 할 때 매니저가 계속 권유해도 '얽매이는 게 싫다'고 거절했거든요. 몇 년 만에 '해보자' 하고 시작했는데, 옛날 사진도 올리고, 제 근황도 보여주는 기능도 있는 거 같아요. 가끔 강박도 생기는데, 그땐 다시 마음을 추스르죠."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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