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혜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돈과 권력은 다 가질 수 없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잊지 않는다고 했다. 1981년 맨손으로 세운 회사를 7년 만에 매출 100억원 기업으로 일군 뒤 친구에게 경영권을 넘길 때도, 2002년 말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입각 제의를 거절했을 때도 그랬다. 늘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있을 것”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유력한 국회의장 후보로 꼽혔지만 ‘웰다잉(well-dying)’ 운동을 하겠다며 작년 말 불출마를 선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41세에 국회의원으로 변신한 것처럼 70대에 또 한 번의 새 출발을 결정한 원 의원을 서울 여의도 소쇄원에서 만났다. 보리굴비가 특기인 남도 음식 전문점이다. 자극적이지 않은 정갈한 맛, 저렴한 가격으로 인기를 끄는 곳이다.
6년 만에 100억원 회사 일궜지만…
“보리굴비 두 개를 반으로 나눠 담아 주시고요, 병어조림도 두 접시 주세요.”
단골임을 증명하듯 원 의원은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주문했다. 여섯 명의 식사치곤 부족해 보였다. 김용환 보좌관은 “항상 소박하다. 주문은 적당히, 고급 음식점은 좀체 가지 않으신다”고 했다. 주행거리가 45만㎞를 넘은 자동차를 “아직 탈 만하다”며 계속 몰았다는 원 의원의 일화가 생각났다.
원 의원은 31세에 풀무원식품을 창업했다. 전문경영인(CEO) 출신 정치인의 원조격이다. 창업한 이유를 물으니 “20대(1970년대)에 유신 반대운동을 하다 보니 제적과 강제징집을 당해 취업할 곳이 없었다”고 했다. 자신을 포장하지 않는, 정치인답지 않은 원 의원의 답변 스타일이 묻어났다.
‘호구지책’으로 창업한 회사는 풀무원. 아버지가 운영하는 농장에서 나오는 채소를 판매했다. 부친인 고(故) 원경선 원장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친환경 유기농법을 도입했다.
시대를 너무 앞서는 바람에 창업 초기에는 고전했다. 처가에서도 돈을 빌려 회사를 꾸릴 정도로 어려웠다. 원 의원은 “사업은 ‘외통수’”라며 “죽기 살기로 했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시작한 풀무원식품은 국내 최초의 유기농, 친자연 사업모델을 선점해 대박을 쳤다. 그의 고생이 빛을 볼 즈음 그는 돌연 경영권을 절친인 남승우 현 풀무원 이사회 의장에게 넘겨줬다.
“1987년 6월항쟁으로 운동권 세력에게 합법적인 정치 공간이 열렸죠.” 20대의 열정을 바쳤던 그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회사 지분을 모두 포기했다. 풀무원식품은 연매출 1조6000억원(2018년 기준)의 중견기업이 됐다.
재산보다 더 많이 기부
원 의원의 정치 철학은 거창하지 않다. “정(政)은 사(私)를 앞세워선 안 된다”고 했다. 국가와 국민을 내세우지 않는다. 다주택자 고관대작이 넘치지만 그는 부친에게 물려받은 1억9000만원 남짓한 주택만 보유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 전셋집에 살며 보증금을 올려주기 위해 신용대출을 받기도 했다.
그에겐 더 큰 ‘재산’이 있다. 회사를 남 의장에게 넘기면서 남겨둔 풀무원 상표권 등 회사 지분 21억원을 기부해 부천육영재단을 세웠다. 재단을 통해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 3740명 이상, 지급액은 22억원에 육박한다.
원 의원은 “아버지가 세운 풀무원의 이름에 맞는 일을 조금이라도 거들 수 있어 다행”이라고 몸을 낮췄다. 풀무원의 풀무는 대장간에서 쇠를 달구기 위해 화덕에 뜨거운 공기를 불어넣는 기구다. 그는 “하찮은 인물이라도 잘 교육시켜 크게 쓰이도록 하겠다는 아버지의 의지가 담겼다”고 했다.
원 의원의 좌우명은 실사구시(實事求是)다. 의원실에도 액자로 27년째 걸려 있다. 그는 “정치와 행정의 기본도 사실에 입각해 진리를 탐구하려는 실사구시의 태도”라고 말했다. 원 의원이 시장으로 있으면서 만화를 매개로 경기 부천시를 문화의 도시로 탈바꿈시킨 것도 틈새시장을 찾으려는 실사구시의 자세가 도움이 됐다고 했다.
원 의원이 부천시장으로 재임할 때 수도권 도시들은 ‘서울의 위성도시’였을 뿐 색깔이 없었다. 그는 ‘문화적인 색깔’을 입혀야 시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만화박물관을 열고, 부천만화정보센터를 세웠다. 이후 한국만화진흥원으로 바뀌었다. 그가 시작한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BIAF)은 아카데미 공식 지정 국제영화제가 됐다. BIAF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은 아카데미상 본선 진출권을 자동으로 받는다.
지금은 당연한 버스 도착시간 안내시스템도 부천시장 시절 그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전국에서 최초로 도입해 2001년부터 시행했다. 서울은 2006년에야 전면 도입했다.
필리버스터 도입한 당사자지만…
병어조림이 나왔다. 국물이 진하고 시원했다. 어우러진 무의 식감도 일품이었다. 원 의원은 지난해 여의도를 뜨겁게 달궜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을 도입한 당사자다. 새천년민주당(현 민주당) 원내대표였던 원 의원은 2012년 자유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 온건파 의원들과 국회선진화법에 합의했다.
원 의원은 “몸싸움 없는 국회를 만들자는 요구가 강했고 내가 설득해서 당론으로 채택한 게 선진화법이었다”고 말했다. 몸싸움 대신 말로 싸우라는 것이다. 소수세력이 자기주장을 국민에게 알릴 기회를 충분히 주자는 취지였다. 그는 “가결을 위해 단순 과반 대신 60% 동의(상임위원회) 조건을 넣는 등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조항이 있다”며 “여야의 극한 대치 탓에 부정당하니 상당히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그는 정치인으로서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다고 했다. 국회선진화법을 도입한 ‘원죄’를 씻기 위해 ‘일하는 국회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원 의원은 “국회 의사일정을 자동으로 지키도록 해 정쟁의 수단으로 쓰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구상도 내놨다. 법안은 한 달에 두 번 이상 반드시 심사하고, 본회의는 일정 합의가 없어도 열리도록 해 의원들이 의사일정을 ‘의무적으로’ 지키도록 국회법을 바꾸는 것이다.
사회 운동으로 여생 보낼 것
올해 70세를 맞은 그가 30년 정치인 생활을 마감하면서 세운 계획은 웰다잉 운동에 헌신하는 것이다. 원 의원은 “무의미한 연명 치료는 받지 않겠다고 서약한 사람이 30만 명을 넘어섰다”며 “법제화는 됐으니 시민들의 생활문화, 사회문화 운동으로 확산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원 의원은 한국 사회에 최근에서야 자리잡은 화장(火葬)문화도 20년 전엔 “못사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란 인식이 지배적이었다고 했다. 원 의원은 “SK 선대 회장인 최종현 회장이 ‘나라가 무덤으로 덮여가는 것은 좁은 국토의 효율적 이용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라며 시신을 화장하고 500억원을 기부한 것이 큰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평생 모은 재산을 내가 죽을 때 어떻게 정리하느냐도 중요하다”며 “그런 결정이 없으면 법의 기준으로 집행되는 건데 참 안타깝고, 아름답지 못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원 의원은 이런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자원봉사 차원에서 웰다잉에 관련된 강연, 상담 같은 걸 할 생각이다.
10년 뒤 원 의원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했다. “‘죽기 전에 유서쓰기’ 강사를 하고 있지 않을까요. 앞으로의 삶은 즐거운 인생을 위해 살 겁니다.” 예상대로 소박했다. “후배 정치인들에게 짐을 맡기고 떠나는 것 같아 미안하다”면서도 표정은 밝았다. 31세에 창업해 기업을 일군 뒤 41세에 국회의원으로 변신한 것처럼 또 다른 70세 이후의 삶에 대한 호기심이 그를 미소짓게 하는 듯했다. “새 출발 하기에 70세는 좋은 나이 아닌가요.
■ 웰다잉이란
인생을 아름답게 정리하고 존엄한 죽음을 맞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향서를 작성하거나 스스로 장례를 준비하고 유서를 쓰는 등의 활동이 이에 속한다. 엔딩노트, 자서전 작성, 사전 장례식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최근 급속한 고령화와 존엄사 논쟁이 맞물려 웰다잉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삶을 잘 사는 웰빙 못지않게 삶을 잘 마무리하는 웰다잉이 중요해지면서다. 웰다잉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뿐 아니라 남겨진 가족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2009년 2월 이른바 ‘김 할머니 사건’을 계기로 웰다잉 논의가 본격화됐다. 당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김 할머니의 자녀는 ‘무리하게 생명을 연장하지 말라’는 모친의 뜻에 따라 서울고등법원에 연명치료를 중단해달라는 소송을 제기, 승소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해 이같이 판결했다.
■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약력
△ 1951년 경기 부천 출생
△ 1970년 경복고 졸업
△ 1981년 풀무원식품 창업
△ 14·17·18·19·20대 국회의원
△ 민선 2·3대 부천시장
△ 1996년 서울대 역사교육과 졸업
△ 2008~2009년 민주당 원내대표
△ 2011~2012년 민주통합당 공동대표
△ 2018년~ 더불어민주당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 의장
■ 원혜영 의원의 단골집 소쇄원
보리굴비 전문 남도 한정식집…통통한 병어조림 단골들의 비밀메뉴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 인근에 있는 한정식집이다. 2014년 6월 문을 열어 올해로 7년째다. 격식을 갖춘 정식 메뉴와 비빔밥 등 가벼운 단품 메뉴가 있어 정치인은 물론 직장인들도 자주 찾는다.
대표 메뉴는 보리굴비와 꼬막비빔밥정식이다. 계절을 타지 않고 연중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계절에 따라서 갑오징어와 참꼬막, 민어 등 제철 해산물을 내놓는다. 김광중 사장은 “신선한 해산물의 맛을 최대한 살린 초무침과 조림이 많이 나간다”고 했다.
남도 음식의 특징인 푸짐함이 상에 가득 묻어난다. 단품만 시켜도 직접 담근 총각무김치와 미역국 등 6~7가지 정갈한 찬이 나온다. 정식 메뉴에는 초무침과 채소샐러드, 매일 바뀌는 일품요리 등 네 가지 찬을 더 맛볼 수 있다. 홍어삼합과 육회, 훈제오리구이 등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점심 특선 정식도 인기다.
메뉴판에는 없지만 통통하게 살 오른 병어를 갖은양념에 감자 무와 함께 졸인 병어조림은 단골들만 찾는 비밀 메뉴다. 식감이 살아 있는 병어살에서 올라오는 은은한 단맛과 양념의 조합이 일품이다.”
김우섭/김소현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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