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규제법안 공장' 20代 국회…작년만 1200건 쏟아냈다

입력 2020-01-02 17:39   수정 2020-01-03 01:27


지난해 국회가 발의한 규제입법 건수가 1200건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15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오는 5월 폐회를 앞둔 20대 국회는 지금까지 4000건에 가까운 규제안을 쏟아냈다.

2일 국회와 국무조정실에 따르면 20대 국회는 현재까지 3884건의 규제를 발의했다. 이 중 본회의를 통과해 규제로 제정됐거나 상임위원회 심사를 거쳐 입법을 앞둔 법안만 1810건으로 절반에 육박(46.6%)한다. 정당별로 보면 더불어민주당이 1974건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어 자유한국당 947건, 바른미래당 366건, 민주평화당 118건 순이었다.

이 중에는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게 대기업의 사업 철수를 권고하는 권한을 보장하는 노골적인 규제부터 셀프주유소에 직원호출장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등 민간 자율에 맡겨도 되는 소소한 규제까지 망라돼 있다. 국가 핵심기관에서 근무했다는 이유로 퇴직 후 3년 동안 유사 직종 취업을 금지시켜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는 규제도 발의됐다.

국회의 ‘규제 본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회의 규제입법이 통계로 처음 잡힌 2015년 944건에서 2017년 1085건을 기록했다. 2018년(614건)에는 주춤했지만 지난해 전년 대비 두 배 폭증한 1200건의 규제가 발의됐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졸속으로 흐를 가능성이 큰 의원입법은 사전에 규제영향분석을 받도록 시급히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소싸움 경기장에 현금지급기 설치 말라"…이런 규제까지
규제 쏟아낸 20대 국회


20대 국회가 역대 최악 수준으로 규제 법안을 쏟아낸 것으로 조사됐다. 발의 건수가 이전에 비해 급증했을 뿐만 아니라 법안 대부분이 입법 명목으로 내세워진 의도와 달리 무수한 부작용을 낼 우려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反)기업 정서에 기대거나 산업 변화에 역행하는 규제 사례도 두드러졌다.

정부, 국회 전문위원도 “황당 규제”

20대 국회가 발의한 규제 법안들은 담당 정부부처나 국회 전문위원으로부터 ‘효과는 거의 없으면서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을 받은 사례가 많았다.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월 전통 소싸움경기에 관한 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소싸움경기장에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둘 수 없도록 한 법안이다. “현금 인출로 거액의 우권 구입이 가능해 도박중독 요인이 된다”는 게 제안 이유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미 법적으로 경기당 10만원 이내로 우권 구입이 제한돼 있다”며 “현금지급기가 없으면 고액의 현금을 지닌 사람이 소매치기 위협에 노출될지 모른다”고 반대했다.

최연혜 자유한국당 의원은 작년 7월 일정 규모 이상 국가 연구개발(R&D)에 참여하는 연구자도 공직자처럼 재산등록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조희섭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문위원은 검토보고서에서 “민간 연구원이 재산등록의무가 생기면 재산권 제한, 사생활 침해 등 부담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필요한 R&D사업 참여를 꺼리게 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기업 정서에 편승…산업 변화 역행도

반기업 정서를 등에 업고 발의된 규제도 많았다. 백재현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해 2017년 3월 통과한 대·중소기업 상생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중소기업적합업종과 관련해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옛 중소기업청장)이 대기업에 사업 철수를 권고하는 권한을 보장하는 내용이다. 중기부조차 민간 자율성 침해와 통상마찰 가능성 등을 이유로 ‘입법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미투(모방) 브랜드 방지법’인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직영점 운영 경험이 1년 미만인 가맹본부의 정보공개서 등록 신청을 공정거래위원회가 거부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가맹사업의 허가제를 도입하는 반시장적 제도’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산업 변화에 역행하는 규제안을 발의한 의원도 있다. 오영훈 민주당 의원이 작년 7월 내놓은 약사법 개정안은 의약품 오·남용을 막기 위해 약국 이외 장소에서 의약품을 구매한 사람을 형사처벌하는 내용의 법안이다. 최근 해외 사이트에서 의약품을 직구(직접구매)하거나 이를 구매대행하는 업자가 늘어나서다. 하지만 미국 등에서는 온라인에서 약을 구입하고 택배로 받을 수 있다. 국회가 산업 변화는 외면한 채 과잉처벌 논란을 빚는 규제를 만드는 데만 골몰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현황 공시의 진위를 공인노무사가 확인하도록 하는 고용정책 기본법과 카드 수수료를 금융위원회가 정하도록 한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도 민간자율을 침해하는 규제라는 평가다.

“의원입법도 규제영향평가 도입해야”

전문가들은 의원입법에도 규제 법안 영향을 분석하는 절차를 도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규제영향평가서를 작성하고 입법예고, 규제개혁위원회 심의 등 분석 과정을 거치는 정부입법과 달리 의원입법은 따로 절차가 없다. 김민호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국회 상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불필요한 규제를 거르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국회 입법에도 규제영향평가를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법안 발의 건수로 의원을 평가하는 기존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규제를 많이 만드는 게 성과처럼 돼 있다”며 “그 과정에서 불필요하거나 적절하지 않은 규제 법안이 양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미현/성상훈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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