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나는 이쪽인가, 저쪽인가…무슬림 이민자의 '정체성 검열'

입력 2020-01-02 18:05   수정 2020-01-03 00:47

“우리에게 소중한 그분들이…조국의 적이란다.”

세이머스 히니의 《테베에서의 매장》에 나오는 이 문장은 영국 작가 카밀라 샴지가 쓴 장편소설 《홈 파이어》의 주제의식을 관통한다. 샴지는 2017년 맨부커상 후보에 올랐고, 2018년엔 여성문학상을 받은 작가다.

이 소설은 정치와 종교적 갈등으로 혼란을 겪는 파키스탄 혈통의 두 영국인 이민자 가족의 삶을 그린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국가에 대한 충성 사이의 극복할 수 없는 간극과 뿌리 깊은 편견, 그리고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소설 제목인 ‘홈 파이어(Home Fire)’에 대해 저자는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다’란 의미와 ‘집이 불에 타다’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후자의 뜻에서 집은 집일 수도, 가족, 국가일 수도 있다. 결국 제목은 이주를 둘러싼 정치에 갇혀버린 이민자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실제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파키스탄에서 태어난 저자가 이민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말하고자 한 것이 소설 곳곳에 반영돼 있다.

소설은 서구 사회에서 혈통과 종교가 다른 시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따라간다. 그들이 단행한 각자 삶에 대한 결정과 복잡하게 얽힌 관계도 파헤친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어린 쌍둥이 동생 아니카와 파베이즈를 돌봐야 했던 언니 이스마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파키스탄 출신으로 영국 런던에 살던 이스마는 미국 대학교수로부터 초청을 받아 오랜 기간 꿈꿔온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던 중 런던에 남아 있는 두 동생 가운데 파베이즈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지하디스트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떠난다. 이로 인해 남은 아니카와 이스마의 삶엔 다시 두려움의 그림자가 짙어진다.

소설을 통해 저자는 법이 우리에게 옳다고 말하는 것과 우리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희생하게 될 것 사이의 갈등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의 집필은 2014년 한 영국 태생의 파키스탄계 사람이 테러조직에 연루되자 테리사 메이 전 영국 총리가 해당 일가족 네 명의 시민권을 전부 박탈해버린 사건을 계기로 시작됐다. 저자는 “그 사건을 접하자마자 반역자라는 이유로 시신마저 방치된 폴리네이케스의 장례를 치러주려 했던 안티고네의 결정이 떠올랐다”며 “죽은 혈육을 향한 인간의 비애와 시신이 존엄하게 묻힐 권리마저 박탈하는 국가의 처분이 지금 현실과 맞닿아 내내 마음을 울렸다”고 말했다.

소설은 ‘이슬람국가(IS) 대 서방국가’ ‘무슬림 대 비무슬림’을 구분 짓는 잣대가 무슬림을 비롯한 이민자 혐오를 지탱해주며 무슬림 이민자의 정체성과 삶의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홈 파이어》 속 등장인물들은 무슬림 정체성을 온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유지하거나, 그 정체성을 극단적으로 실현하려 하거나, 무슬림이 드러나지 않도록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스스로 검열한다. 저자는 “민족주의, 소속된 자와 아닌 자를 구분하는 고통 속에서 어떤 형태로든 가족 간 유대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 이들의 용기를 그려내고 싶었다”고 말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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