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함이 느껴졌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등 경영계 오너들이 2일 발표한 신년사에서다. 이들은 생존을 위한 혁신을 강하게 주문했다. 매년 ‘위기론’을 설파해왔지만 올해는 정말 상황이 심각하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업종 간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지는 상황에서 잠시라도 방심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유통업계 화두는 수익성 개선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유통기업 총수들은 “위기가 일상화하고 있다. 적당히 타협하는 관습에서 벗어나 핵심 경쟁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신년사에 담았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모든 것을 어중간하게 잘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단 하나의 역량을 확실하게 선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세계 각 계열사가 ‘어중간하게 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라’는 주문도 했다. 정 부회장은 작가 맬컴 글래드웰의 ‘고추냉이 벌레’ 비유를 들어, “고추냉이 속 벌레는 이보다 달콤한 세상이 없다”며 “자기가 사는 작은 세상만 갉아먹다 결국 쇠퇴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랜 성공의 틀에서 효율만 추구하다 보면 모든 것이 현재의 조건에 맞도록 최적화되고, 이 과정에서 소비자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다”며 “고객에게 광적으로 집중하라”고 주문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지금을 “비상이 일상이 된 상황”이라고 규정하고 “더 잘하는 것(do better)에 머물지 말고, 다르게 행동해(do different) 소비자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고 말했다. 그는 “최근 수년간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미래 성장을 위한 준비도 미흡했다”며 “이는 근본적 해결책을 찾기보다 업계 대응방식에 적당히 타협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회장은 “임원들이 단기적인 성과에 매몰돼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새로운 시도가 실패하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게 평가제도를 보완하라”고 주문했다.
내우외환의 한진, 화합 강조
항공업계의 실적 악화와 작년 말 누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반기’로 내우외환을 겪고 있는 조원태 회장은 화합을 강조했다. 조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대한항공 100년을 향한 원년이 되는 올해, 혼자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길을 걷는다면 기쁨과 즐거움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안전’을 키워드로 내세웠다. 조 회장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안전과 더 세심하고 사려 깊은 서비스를 위해 보고 또 보는 여러분의 모습에서 대한항공의 희망을 봤다”며 임직원을 격려했다.
조현준 회장은 ‘넓은 시야’를 강조했다. 그는 “인공지능(AI)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며 “모든 분야에서 업의 개념, 게임의 룰이 통째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변화는 나무 하나만 봐서는 알 수 없다”며 “숲을 보는 시야를 가지고 빠른 변화를 알아내 선도하는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기계발·혁신 일상화해야
조현식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부회장은 “연구개발(R&D), 생산, 유통, 판매 등 모든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타이어 부문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지위를 공고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은 ‘업그레이드 마이셀프’를 경영 키워드로 제시했다. 그는 “임직원들은 퇴근 후에 다양한 경험과 자기 성장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며 “구성원 모두가 전문가가 되는 것이야말로 동국제강의 경영방침인 부국강병 중 강병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당부했다.
이순형 세아그룹 회장은 “국내외에 짙게 드리운 경기 침체의 그늘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이런 때일수록 ‘때문에’가 아니라 ‘불구하고’에 방점을 둬야 한다”며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혁신을 추구하는 일을 일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만수/안재광 기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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