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임원들이 행장 자리를 놓고 파벌을 형성하고 정치권 로비를 벌였다. 외부 인사 투입은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낙하산 논란에 빠진 기업은행장 인사와 관련해 정부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윤종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 대해서는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 맞는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3일 차기 기업은행장으로 윤 전 수석이 선임됐다. 윤 행장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IBK기업은행 본사에서 열리는 '26대 기업은행장 취임식'에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노조의 출근 저지 투쟁에 막혀 20분 만에 발길을 돌렸다. 기업은행장 취임식은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기업은행은 전날 "윤 전 수석이 제26대 중소기업은행장으로 취임한다"고 밝혔다. 윤 행장에 대해서는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본연의 역할을 한 단계 발전시키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선진 금융그룹으로 도약하는데 기여할 적임자"라고 소개했다.
정부가 53%, 국민연금이 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행은 2010년 조준희 행장을 시작으로 3차례 연속 내부 출신 최고 경영자를 배출하며 큰 폭의 성장을 거뒀다. 2018년 1조7647억원의 순이익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냈고 지난해에는 2조원에 가까운 순이익을 거둔 것으로 추산된다.
윤 행장은 서울 인창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27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이후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 등을 거쳐 지난해 6월부터는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일했다. 금융업계를 관리·감독하는 은성수 금융위원장과는 서울대 경제학과 80학번 동창이자 행정고시 동기다.
청와대는 당초 반장식 전 청와대 일자리수석비서관을 임명할 계획이었지만 '금융 경력이 전무하다'는 비판에 윤 행장으로 선회했다. 윤 행장 역시 금융 경력이 전무하지만 정책금융이 주를 이루는 기업은행 수장으로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정통 예산 관료인 반 전 수석과 달리 윤 전 수석은 IMF 등의 경험이 있다"면서 "기업은행 업무 특성상 그렇게 무리한 인사는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윤 행장 역시 이날 "(저에 대해) 함량미달 낙하산이라고 하시는데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청와대가 논란에도 불구하고 외부 인사를 고집한 배경에는 기업은행 일부 임원들의 파벌 정치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가 담겼다는 분석이 많다. 기업은행은 외부 인사로 꾸려진 이사회, 경영관리위원회 등이 아닌 금융위원회, 청와대 인사 검증을 거친다.
이 때문에 부행장(전무 포함 17명)과 자회사 사장(9명) 누구라도 기업은행장에 오를 수 있다. 일부 임원들이 지난해 말부터 실무를 내팽개치고 정치인을 만나러 다닌다는 소문이 나온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특히 오는 1월로 임기가 끝나는 일부 부행장들의 로비가 도를 지나쳤다는 평가도 있다.
윤 행장의 첫 출근길에도 10여 명의 부행장들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노조와의 마찰이 일어나기도 했다. 노조는 이들을 향해 "부끄러운 줄 알아라" "당신들 때문에 낙하산이 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기업은행 내부에서도 이 같은 상황에 대한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후보추천위원회 등 투명한 집행 절차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청와대가 추진하는 외부 인사 선임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게 다수의 시각이다. 기업은행 한 직원은 "파벌, 정치권 로비 때문에 내부 인사는 안 된다는 논리는 관료 출신 낙하산을 임명하기 위한 핑계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기업은행 노조는 문재인 정부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없던 관치금융을 되살렸다고 크게 분노하고 있다. 출근 저지 투쟁은 물론이고 총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100일 앞으로 다가온 4.15 총선까지 무기한 투쟁을 이어가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김형선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그토록 분노하던 인사 적폐가 문재인 정부에서 일어났다"면서 "청와대 출신 인사를 기업은행장에 내려보내려는 것이야말로 인사 적폐이자 관치 금융이다. 낙하산 인사를 끝까지 막아 내겠다"라고 했다.
윤진우 한경닷컴 기자 jiin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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