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지시로 경찰이 검찰 인사 대상자들에 대한 세평을 파악중인 가운데, 개별 검사들에 대한 세평전 순위표가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순위표에서는 윤석열 검찰총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검사들 상당수가 중하위권에 머무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알 수 없다는 입장이고, 법무부도 관여한 바가 없다는 주장이어서 누가 이 순위를 매겼는 지 의혹이 가중되고 있다.
3일 세평 관련 리스트를 직접 봤다는 법조계 인사는 “검사들을 나열한 방식이 가나다 이름순이나 연령순이 아니었고 기준이 불명확한 순서에 따라 전체 200여명 중 80여명의 이름만 적혀져 있었다”며 “윤 총장 측근들은 리스트의 아랫부분에 몰려 있었고, 문재인 정부에 우호적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검사들의 이름은 상위권에 포진했다”고 말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지난달 30일 검찰 간부 인사 대상자 200여명(사법연수원 28~30기)이 주변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 알아봐달라고 경찰에 지시했다. 연수원 28~29기는 ‘검찰의 꽃’으로 불리는 검사장 승진 대상자다. 30기는 신규 차장검사를 맡을 수 있다.
세평 리스트 가운데 이종근 인천지방검찰청 2차장검사는 빠져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때부터 법무부 검찰개혁 추진지원단 부단장을 맡아온 이 차장검사는 현 정부와 가장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가 명단에 빠진 이유로 경찰의 세평을 받을 필요없이 요직에 앉히겠다는 인사권자의 뜻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경찰은 "세평 리스트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한다"고 해명했다. 법무부 역시 관여한바가 없다는 입장이다. 법조계에서는 ‘검사 순위표’에 대해 불쾌해하는 시각이 역력하다. 사정당국에 정통한 관계자는 “검찰 인사를 앞두고 경찰이 세간의 평가를 취합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아예 누군가가 검사들의 순위를 매겨버렸다”며 “어떤 기준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검사들의 줄을 세우는 것은 권한 밖의 일이고 부적절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그는 "경찰이 관여한 것이 아니라면 청와대가 사전에 순위를 매기는 데 관여했다는 의미"라며 "법무부가 인사판을 짜기도 전에 사전에 각본이 있었다는 의혹을 지울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경찰의 검찰 인사 대상자에 대한 세평 보고서 작성으로 정보경찰 부작용을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국내 정보수집 기능은 현재 정보경찰이 전담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국내 정보수집 기능이 사라지면서다. 청와대의 정보경찰 의존도가 커질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클럽 버닝썬 ‘윤총경’ 사건과 울산시장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 사건 등에 정보경찰이 개입했다는 사실까지 불거지자 개혁 필요성을 강조한 의견이 늘어났다.
지난해 9월에는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10여개 단체가 “정보경찰을 없애는 게 경찰개혁의 핵심”이라며 ‘정보경찰 폐지 인권시민사회단체 네트워크(정보경찰 폐지넷)’를 발족하기도 했다. 정보경찰 폐지넷은 “경찰 개혁의 핵심이자 공안 통치의 잔재인 정보국을 해체하고 정보 경찰을 폐지하라”며 “권력과 결탁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파괴해온 정보 경찰의 역사를 끊어내자”고 주장했다.
경찰개혁위원회는 당초 ‘정보경찰 폐지’를 추진했으나 경찰 반발에 밀려 ‘정보경찰 재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정보경찰은 경찰청 정보국을 중심으로 지방청·경찰서 정보과 등에 소속돼 있으며 공공기관을 비롯해 정치 경제 노동 학원 종교 시민사회 등의 분야에서 정보활동을 벌이고 있다. 인력은 전체 경찰 12만명 가운데 3000여명 정도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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