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모의 데스크 시각] 국가는 어떻게 실패하는가

입력 2020-01-05 17:34   수정 2020-01-06 00:25

서울에서 무역대리업을 하고 있는 외국인 K씨는 지난해 큰 곤욕을 치렀다. 일 처리가 엉망이고 업무 시간 중 수시로 스마트폰을 만지는 직원 한명에게 해고 통보를 한 것이 발단이었다. 얼마 뒤 관할 고용노동청에서 찾아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며 재고용을 권고했다. K씨는 해고 사유를 되풀이 설명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다시 고용된 그 직원은 더 게으름을 부리며 시위(?)를 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K씨는 “한국이 불과 몇 년 만에 이렇게 바뀔 줄 몰랐다. 정부가 저성과자를 과잉보호하면서 다른 직원들의 일할 의욕까지 꺾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부문도 마찬가지다. 공공기관의 ‘철밥통’을 깨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2016년 도입된 성과연봉제는 문재인 정부 출범과 동시에 폐기됐다. 차선책으로 내놓은 직무급제 도입은 강성노조의 벽에 가로막혔다. 이제는 한 번 고용되면 업무 성과와 관계없이 평생고용을 보장받고 임금은 매년 자동으로 오른다.

일해야 하는 동기가 사라진다

열심히 일하면 남들보다 더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 그래서 일할 의욕을 북돋우는 경제적 인센티브 시스템이 곳곳에서 무너지고 있다. 지난해 실업급여(구직급여) 지급액이 매달 최고치를 경신하자 정부는 “고용안전망이 강화되고 있다”고 자평했다. 실제로 지급액(퇴직 전 평균 임금의 50%→60%), 지급 기간(최장 240일→270일) 등 보장 수준이 높아졌다. 문제는 구직급여를 받은 사람들의 재취업률이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6년 31.1%에서 2017년 29.9%, 2018년 28.9%로 낮아지다가 지난해(1~10월)엔 26.6%로 뚝 떨어졌다. 후한 실업급여가 단기근로자와 저소득층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와 주기적 실업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청년들에게 퍼주는 현금수당이 하도 많아 ‘청년수당 테크’란 말까지 등장했다. 굳이 땀 흘리지 않아도 된다. 국가가 적당히 책임을 져준다. 이런 그릇된 믿음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정부가 경쟁의 패자와 약자를 보호하는 건 당연한 책무이지만, 자유경쟁의 틀과 보상 시스템을 허물 정도라면 곤란하다.

경쟁 기피해서는 성장 못해

대런 애쓰모글루 미국 MIT 경제학과 교수는 역작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각 나라의 번영과 빈곤은 어떤 제도를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갈파했다. 개인들에게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나라는 지속 성장을 하고 그렇지 않은 나라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명예혁명 몇십 년 뒤 산업혁명이 시작된 건 우연이 아니다. 증기기관을 완성한 제임스 와트 등의 혁신가들이 탄생한 건 발명품으로 돈을 벌 수 있고 사유재산권이 보장될 것이란 믿음이 있어서였다. 한때 런던보다 세 배나 큰 도시였던 베네치아가 쇠락한 건 잘못된 제도 탓이었다. 정부가 무역을 국유화하고 개인 무역상에게 높은 세금을 물리면서 경제가 오그라들었다.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이유는 국민이 무지하거나 천성이 게을러서가 아니다. 정치가들이 개인의 경제적 인센티브를 죽이고 빈곤을 조장하는 제도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의 핵심 인사들 입에서 경쟁, 노동생산성 같은 말을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경쟁을 불평등의 근원으로 보는 인식이 강하다. 자유경쟁은 ‘공정’에 방점이 찍힌 공정경쟁에 밀려났다. 노동생산성은 ‘노동존중’에 파묻혔다. 공평하게 나누자는데 누가 더 열심히 일하겠는가. 그 결과는 생산성 저하, 국부의 감소다. 대한민국이 실패의 길로 가고 있는 것 같아 두렵다.

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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