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연합(EU) 간 무역 갈등이 조만간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나라의 교역 환경은 올해도 순탄치 않을 겁니다.”
통상 전문가인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은 지난 3일 서울 남대문로 광장 사무실에서 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출신인 박 원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이명박 정부 땐 장관급이던 통상교섭본부장을 맡았다. 그는 “올해 한국 수출은 중국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위주로 소폭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EU 분쟁이 새 변수로
박 원장은 올해 세계 무역환경이 작년보다 다소 개선되겠지만 순탄치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과 EU 간 갈등이 본격화할 수 있어서다. 그는 “11월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새로운 집행부가 구성된 EU와 사사건건 대립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박 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을 선호하기 때문에 EU와도 개별 협상을 하고 싶어 한다”며 “EU의 탄소국경세와 개인정보보호법, 디지털세 등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 협상이 난항을 겪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미국은 EU와의 협상 과정에서 무역확장법 232조 및 슈퍼 301조 등을 활용할 수 있다”며 “이 경우 글로벌 보호무역주의가 확산하고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도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 원장은 미·중 무역분쟁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그는 “미·중 통상 합의가 1단계 서명을 앞두고 있지만 실제 이행 과정에서 분쟁이 언제든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의 반(反)화웨이 정책이 중국 보조금 정책 및 국영기업 문제로 확대되면 양국 갈등은 오히려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중 분쟁은 수십 년간 지속될 수 있다는 게 박 원장의 생각이다. 무역뿐만 아니라 환율, 안보, 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미국이 중국 견제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 원장은 “역사적으로 글로벌 슈퍼파워 간 패권전쟁은 수십 년 지속됐다”며 “향후 민주당 행정부가 다시 들어서도 양국 갈등은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한국산 제재 가능성도
한국산 수출품이 미국에서 추가 제재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내놨다. 박 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이전에 표심을 의식해 노동집약적 제조업 분야에서 한국산 제품에 제재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그는 “슈퍼 301조까지 들고 나올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자동차 반도체 선박 철강 등의 관세율을 일시적으로 높이려는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고 했다. 한국 기업은 올 들어 본격 발효된 미·일 FTA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박 원장은 “미국 시장에서 한국 상품이 FTA로 누려온 혜택을 일본 제품 역시 똑같이 받게 됐다는 의미”라며 “우리 상품의 상대적 우위가 사라지게 된 만큼 새로운 경쟁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작년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을 대폭 확대하기로 한 것처럼 대미(對美) 무역수지 관리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미국을 상대로 매년 100억~200억달러의 무역 흑자를 기록하는 점이 미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어서다. 그는 “어차피 수입해야 하는 상품이고,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면 미국에서 들여오는 전략이 유효하다”며 “동시에 시장 다변화 차원에서 일본 중남미 아프리카 중동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과의 FTA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원장은 우리 기업들이 최대 교역국인 중국 내수를 직접 겨냥하는 전략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소재·부품 등을 중국에 보낸 뒤 현지에서 조립 생산해 재수출하는 가공무역 비중이 높은데 이를 제외하면 한국의 중국 의존도가 높다고 할 수 없다”며 “세계 최대 시장으로 부상한 중국 수출을 더 늘릴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산업부 내 통상교섭본부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차관급인 통상본부장을 종전처럼 장관급으로 격상해야 대외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통상본부는 협상전문가들의 조직인 만큼 독립성을 보장하는 게 중요하다”며 “외국 공관이나 외국계 기업과 상시 소통해야 하는 만큼 세종시에서 서울로 옮기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고 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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