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흥망성쇠 달렸다…'AI 골든사이클' 올라타라

입력 2020-01-05 17:29   수정 2020-01-06 06:53


역대 산업혁명마다 주도 기술이 있었다. 활용 범위가 매우 넓고 투자와 생산, 소비를 크게 바꿔 놓은 기술이다. 증기기관과 전기, 컴퓨터 등이 대표적이다. 학자들은 이런 기술에 ‘범용기술(GPTs)’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훗날 지금의 시대를 ‘4차 산업혁명’이라고 기록하든, ‘신(新)콘드라티예프 장기파동’이라고 명명하든 그것은 역사가들에게 맡기면 될 일이다. 주목할 것은 인공지능(AI)이 새로운 기술과 산업혁명을 이끄는 범용기술임을 선언하고 있다는 점이다. 7~10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20’을 통해서다.

미국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C)는 AI가 3차 물결을 타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1980년대 일부 전문가들만 쓰던 AI가 1차 물결이었다면 AI 스스로 학습하는 ‘머신 러닝’ ‘딥러닝’이 도입된 2000년대가 2차 물결의 시대였다. NSTC는 “이제는 ‘설명 가능한, 더 일반적인 AI’ 수준으로 발전하는 3차 물결로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자율·범용 AI’가 본격화하기까지는 또다시 인내와 조정의 기간을 필요로 하겠지만, 뉴스·쇼핑 등의 추천 기능 같은 ‘인터넷 AI’는 이미 일상이 되고 있다. AI 알고리즘의 의사결정 지배 논란이 가열될 정도다. 음성 인식, 안면 인식, 언어 번역, 자율 주행 등의 눈부신 진화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팩토리 등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전환을 시도하는 ‘비즈니스 AI’는 제조업 서비스업 가릴 것 없이 전 업종으로 퍼지고 있다. 새로운 비행 노선을 향한 ‘AI 주도 경제의 이륙’이라고 할 만하다.

역사는 자본주의가 새로운 기술혁명으로 위기를 넘기며 진화해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김진형 중앙대 소프트웨어대학 석좌교수는 AI로 문제를 해결하는 등 혁신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새로운 부자가 등장하는 ‘솔루션 자본주의’가 밀려오고 있다고 말한다. ‘자본주의는 변화의 형식 또는 방법’이라는 조지프 슘페터의 주장을 따른다면 ‘AI 자본주의’가 오고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CES 2020이 던지는 메시지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역대 기술혁명이 국가 간 운명의 엇갈림을 가져왔던 것처럼, AI 물결을 올라타는 데 성공하는 국가와 실패하는 국가 간 희비를 극명하게 갈라놓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 CES 2020 현장에서 열리는 세션과 세미나 가운데 ‘AI와 일상생활’ ‘AI가 변화시킬 글로벌 경제’ ‘모든 산업의 통합 촉진자 AI’에 특히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지금은 국가 운명 걸린 대전환기
'AI 주도 경제'로 바꿔야 생존


인공지능(AI), 5G(5세대),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자율주행차, 모빌리티, 드론, 빅데이터, 클라우드, 블록체인, 핀테크(금융기술), 디지털 헬스, 로보틱스, 8K TV, 마이크로 LED, 스마트홈, 스마트시티….

CES 2020 참여 업체들의 부스는 다양하지만 이 모두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AI다. AI가 기술과 산업의 경계를 넘어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플랫폼 혁신 생태계’로 자리 잡고 있다.

맥킨지글로벌연구소(MGI)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은 AI에 힘입어 앞으로 최소한 10년간 매년 1.2%포인트 추가로 증가할 것이란 시뮬레이션 결과를 내놨다. 모든 국가가 AI로 자국의 연간 성장률에 1.2%포인트를 더한다는 게 아니다. 어떤 국가는 그 이상으로 성장하고 어떤 국가는 그 밑으로 성장하는 등 국가 간 ‘대분기(great divergence)’가 일어날 것이라고 해석하는 게 맞을 것이다.

한국 경제의 극적 전환 달렸다

경기 사이클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장기·중기·단기 사이클이 다 꼬꾸라지면 ‘대공황’이라고 말한다. 50~60년의 새로운 장기 파동이 오고 있다는 것은 위기를 탈출할 수 있는 ‘거대한 기회의 창’이 열리고 있다는 뜻이다. 장기 사이클 상승 국면에 진입하면 그 안에서 중기·단기 사이클이 숱하게 반복되더라도 상승 쪽에 힘이 실리게 된다. AI로 장기·중기·단기 사이클의 동시 상승, 이른바 ‘AI 골든 사이클’의 신성장 S 곡선을 주도하는 국가가 헤게모니를 쥘 가능성이 크다.

AI 투자 경쟁도 달아오르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가 최근 발표한 ‘인공지능 인덱스 2019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은 AI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투자에서 양강 체제를 이루고 있다. 1인당 AI 스타트업 투자에서는 이스라엘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한국 경제는 잠재성장률이 1%대로 추락하는 ‘저성장 시대’에 진입했다는 진단이 무성하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저출산·고령화 사회’를 맞이하고 있다는 경고도 들린다. 역동적인 경제라면 이런 상황에서 ‘불황의 미학(美學)’이 작동해야 정상이다. 구조조정이라는 고통을 피해갈 수 없을 때야말로 혁신의 적기(適期)다. 인적·물적 자원의 이동이 혁신의 압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인구가 절반으로 줄더라도 노동생산성을 두 배로 올리고 신수요를 창출하면 현상 유지가 가능하다. 생산성을 그 이상으로 올리면 모두가 두려워하는 수축사회의 악순환도 끊어낼 수 있다.

관건은 ‘AI 주도 경제’가 요구하는 성장 잠재력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로머는 노동과 자본의 ‘수확 체감’ 한계를 지식의 ‘수확 체증’으로 극복하면 새로운 성장이 가능하다는 ‘신성장론’을 주창했다. CES 2020은 한국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지식과 혁신의 주무기 AI로 얼마나 무장하고 있는지 묻고 있다. 맥킨지의 AI 성장률 기여도를 그대로 대입하면 한국 경제는 연간 1%대 성장률로 추락하느냐, 3%대 성장률로 반전할 수 있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AI 활용한 산업 키우자

글로벌 컨설팅 회사들이 기업 또는 국가 단위에서 분석한 AI 투자와 생산성 효과의 불일치, 이른바 ‘AI 생산성 패러독스’가 종종 뉴스를 탄다. CES 2020은 이것이 AI의 문제가 아니라는 확신을 던져주고 있다.

모든 계량적 분석이 그렇듯이 마지막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해석이다. 생산성의 질 등 측정상의 한계, 투자와 생산성 실현 사이의 불가피한 시차는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런 요소들을 배제하면 기업 간·국가 간 AI 성과의 희비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게 학자들의 결론이다. 기존 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한계기업 정리 등 구조조정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없는 국가라면, 신산업이 규제에 막혀 있는 국가라면, AI 투자가 아무리 늘어나도 생산성이 올라가지 않는 것은 ‘역설’이 아니라 ‘정설’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한국은 어느 쪽인가. 그동안 한국 경제의 성장을 이끈 제조업은 고부가가치화로 질주하는 선진국과 중국의 거센 추격 사이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한다. 주력 제조업에서 축적한 도메인 지식의 활용이 기대되는 AI 스마트팩토리 앞에는 대기업 규제, 노동조합의 저항, 대·중기 생산성 격차 등 걸림돌이 많다. 한국이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는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도 AI 시대를 맞아 전방위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선진국 대비 생산성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서비스업으로 가면 갈 길이 더 멀다. 곳곳이 지대(rent)와 보호, 진입장벽의 지뢰밭이다. 승차공유 논란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낮은 서비스업 생산성은 AI를 활용한 제조업의 서비스화까지 어렵게 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새로운 성장 사이클에 올라타려면 ‘AI 친화형 산업구조’로의 전환은 필수다.

‘AI 전략자산’ 확보가 중요

CES 2020은 기업 간·국가 간 AI 속도 경쟁을 보여주는 장이기도 하다. AI 추격국으로서는 AI 선진국인 미국이 밟아나간 순서를 그대로 따라할 여유도, 능력도 없다. 한국이 추격에 성공하려면 고유의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AI 혁신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자원을 집중해 AI의 수요-공급 연결망을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 글로벌 차원에서 개방된 AI 지식을 최대한 활용하는 동시에 국가 내부적으로 AI 연구와 인재 양성, AI 기업 육성과 신시장 창출 등을 다발적으로 밀어붙여야 한다.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라도 막히면 AI 혁신 생태계의 선순환을 기대하기 어렵다.

미·중 충돌 구도에서 한국의 위상은 ‘AI 전략자산(choke point)’, 즉 AI 핵심 기술과 제품·서비스 그리고 이를 보유한 기업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렸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첫째도 AI, 둘째도 AI, 셋째도 AI”라고 했지만, 이것은 전략일 수 없다. 후발자가 진입하기 어렵고 선발자가 손잡고 싶어 하는 새로운 ‘진입구(entry point)’를 찾아야 한다. 한국이 AI에 승부를 걸 수 있는 첫 번째 진입구, 두 번째 진입구, 세 번째 진입구는 어디인가. CES 2020에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풀어야 할 과제다.

라스베이거스=안현실 논설·전문위원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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