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만난 한 핀테크 업체의 A대표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울분을 토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제로페이 추진단 명의로 지난해 5월 제로페이 운영을 위한 특수목적법인(SPC)인 한국간편결제진흥원 출범을 위해 20개 은행과 8개 핀테크 업체에 각각 10억원의 출연금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자 출연금 기준은 최소 2억원으로 낮아졌다.
은행과 핀테크 업체들은 출연금을 내놓긴 했지만 불만이 적지 않다. 그나마 자산과 순익 규모가 큰 은행들은 여유가 있는 편이다. 반면 핀테크 업체엔 이 같은 금액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네이버를 제외하고 제로페이에 참여한 핀테크 업체 일곱 곳 중 2018년 기준 당기순이익이 200억원을 넘은 업체는 한 곳뿐이었다. 이 중에는 수백억원의 적자를 보는 업체도 있었다. 제로페이에 참여하기 위해 내야 하는 돈은 출연금뿐만이 아니다. 제로페이는 QR코드 기반 간편결제다. 핀테크 업체들은 제로페이에 맞는 표준규격을 맞추기 위해 새로 시스템을 개발해야 했다.
출연금을 내지 않겠다고 버티기도 힘든 상황이다. 핀테크 업체들이 출시한 서비스 중엔 아직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것이 많다. 금융당국이 금융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시범 운영을 허락하긴 했지만 이 기한도 최장 4년에 불과하다. 핀테크 업체들은 훗날 규제완화 관련 불이익이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출연금을 내기로 했다는 후문이다.
한국간편결제진흥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출범 이후엔 핀테크 업체들의 출연금을 강요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핀테크 업계에선 겉으로 핀테크 규제완화를 외치면서 이면에선 관치금융 논란이 있는 제로페이 출연금을 요구하는 정부 정책의 모순을 꼬집는 이가 적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8월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지금의 은산분리 규제를 산업혁명기 영국의 ‘붉은 깃발 법(Red Flag Act)’에 비유하며 과감한 혁신을 주문했다. 19세기 말 영국 정부가 자동차 속도를 마차 속도에 맞추려고 자동차 앞에서 사람이 붉은 깃발을 흔들게 한 법이다. 영국의 자동차산업이 독일과 미국에 뒤처진 이유로 자주 회자된다. 당시 핀테크 업체 관계자들은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을 환영했다. 금융 전반에 걸친 규제를 혁신해 핀테크산업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다른 핀테크 업체 관계자는 “핀테크 업체들에 대한 규제와 비용 부담만 덜어줘도 제로페이보다 소비자에게 도움되는 혁신적인 금융서비스 출시가 더 빨라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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