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지만 올해 은행권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어둡다. 저금리·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면서 수익 기반이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오픈뱅킹(하나의 은행 앱에서 모든 은행 거래를 할 수 있는 서비스)·핀테크(금융기술) 발달로 무한경쟁이 예고되면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금융권 주요 수장은 신년사 등을 통해 “올해는 생존을 위한 해”라며 디지털 혁신과 새 수익원 발굴을 잇따라 주문했다.
저금리·저성장 장기화하나
국내 경제 연구기관들은 올해 금융시장에 저금리·저성장의 그림자가 드리울 것이라는 분석을 잇따라 내놨다. LG경제연구원은 저물가로 인한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내년까지 기준금리가 0%대에 진입할 것으로 내다봤다.
LG경제연구원은 올해 금융시장에 대해 경기 부진에 따른 수요 둔화, 저금리 장기화로 수익성이 빠르게 악화할 것으로 관측했다. 글로벌 시장 역시 유로존 은행들이 재무 상황 악화로 부실이 예상돼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은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글로벌 통화 정책 완화 기조로 은행의 수익성이 나빠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미 우리나라는 유례 없는 수준의 저금리 기조에 들어섰다. 지난해 한국은행은 경기 둔화를 고려해 7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내려 연 1.25%로 하향 조정했다. 2017년 11월 사상 최저 기준금리와 같은 수치다. 기준금리가 낮아지면 은행도 이에 맞춰 예·적금 금리를 조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기준금리에 맞춰 예·적금 금리를 낮췄다가 다른 은행에 고객을 뺏길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며 “결국 은행의 수익을 포기해 가며 고객을 붙잡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오픈뱅킹으로 ‘무한경쟁’
지난해 오픈뱅킹 서비스가 시작된 것도 은행에는 기회이자 고민거리다. 오픈뱅킹 아래에서는 은행 앱(응용프로그램) 하나만 깔면 모든 은행의 계좌를 조회하고 이체도 자유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이 자금을 이리저리 옮기기 쉬워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부터는 핀테크 업체까지 오픈뱅킹에 참여하게 됐다. 핀테크 업체들은 은행의 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를 활용해 새로운 서비스를 앞다퉈 개발하고 있다. 저축은행 및 제2금융권도 오픈뱅킹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은행으로선 기존 고객을 빼앗기지 않아야 하는 중요한 미션이 생긴 셈이다. 은행들은 오픈뱅킹 아래에서 수수료를 파격적으로 깎아주는 등 다양한 혜택으로 고객 잡기에 나섰다. 또 유망한 핀테크 업체와 손을 잡는 등 합종연횡도 활발하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오픈뱅킹은 위기이기도 하지만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며 “오프라인 창구까지 오픈뱅킹 적용이 예고되고 있는 만큼 준비를 잘 한 은행과 그렇지 않은 은행의 차이가 확연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수장들 “위기 넘어 기회로”
올해 금융지주 회장들도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각오를 신년사에서 다양하게 내놨다. 인수합병(M&A) 등을 통한 신산업 진출과 새로운 혁신이 필요하다는 발언이 잇따랐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은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 관점에서 국내와 해외, 금융과 비금융을 아우르는 M&A를 꾸준히 검토할 것”이라며 “4차 산업혁명 시대 금융의 경계를 뛰어넘어 핀테크, 빅테크 등 국내외 다양한 기업과 협업하고 폭넓은 산학·민관 협력에도 나서겠다”고 말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위기가 왔을 때 어떻게 극복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리더’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한다면 ‘팔로어’로 남을 수밖에 없다”며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 강화 차원에서 다양한 M&A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할 것이며, 신중하게 접근하되 기회가 왔을 때 과감하고 신속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은행의 기존 영업 관행을 반성하고 새로운 문화를 조성할 것이라는 각오도 내놨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그룹의 사업모델과 프로세스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며 “고객 중심에서의 경영에서 고객과 직원, 주주, 공동체를 아우르는 모든 이해 관계자의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목표를 재정립하겠다”고 말했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은 “모든 업무를 추진할 때 항상 기본과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고객을 진심으로 모시고 존중해 신뢰를 다시 되찾는 것은 저를 비롯한 우리 가족 모두의 의무이자 올 한 해 우리금융그룹의 지상과제”라며 “2020년이 고객 신뢰 회복을 위한 한 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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