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IB, 부동산 대출 그만하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요 증권사 등 금융투자업계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나 “IB의 대출과 지급보증 등 신용공여 대상으로 규정된 중소기업 범위에서 특수목적회사(SPC)와 부동산 관련 법인을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현행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일반적인 증권사는 자기자본의 100% 이내에서 투자자 신용공여(주식담보대출 등) 및 일부 기업금융 관련 대출이 제한적으로 가능하다. 자기자본 3조원을 넘겨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로 지정되면 기업대출은 물론 중소기업 및 기업금융 업무에 한해 자기자본의 200%까지 신용공여를 할 수 있다. IB 육성 차원에서 자본력을 갖춘 일부 대형 증권사에 대해서는 은행처럼 기업대출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하지만 종투사들이 이처럼 추가로 부여된 신용공여 한도를 실제론 부동산 등 기업금융과 직접 관련 없는 분야에 사용하고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명목상 중소기업으로 분류되는 SPC를 거치면 부동산 등 중소기업 외 분야로 IB의 신용공여가 얼마든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종투사의 SPC 대출액 약 5조원 중 40%가량이 부동산 분야로 흘러간 것으로 추정했다.
은 위원장의 이날 발언은 종투사의 신용공여 자금이 지나치게 부동산으로 쏠리는 현상을 더 이상 묵과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증권업계에서는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대부분의 부동산금융이 SPC를 활용하는 점을 고려하면 자기자본 대비 신용공여 비중이 100%를 넘어가는 구간에서는 부동산 투자가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7개 종투사(작년 신규 지정된 하나금융투자 제외)의 자기자본 대비 신용공여액 비중은 메리츠종금증권이 126.9%로 가장 높았고 KB증권(90.0%), 한국투자증권(88.4%), NH투자증권(84.5%), 신한금융투자(82.9%), 삼성증권(78.4%), 미래에셋대우(75.7%) 순이었다. 기업 신용공여 중 부동산 비중은 메리츠증권(56.4%), 신한금투(39.3%), 한투증권(38.0%) 순으로 높았다.
업계 관계자는 “자기자본 대비 신용공여 비중이 100%를 넘는 메리츠는 물론 80~90% 수준인 다른 증권사들도 상당한 제약을 받을 것”이라며 “증권사 IB 부문이 커지면서 신용공여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금조달·투자위축 불가피
당국의 표적이 된 각 증권사 IB 부서는 연초부터 자금조달·투자계획 수정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한 대형 증권사는 올해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의 운용 한도를 작년 수준으로 동결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은행 예금에 비해 비교적 고금리를 지급하는 발행어음에 대한 시장 수요가 계속 높아지고 있지만 규제 강화로 더 이상 확대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증권사 관계자는 “신용공여 위험액이나 레버리지 비율 산정 등 부동산금융 규제가 타이트해지면서 자금 운용의 폭이 극도로 좁아진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증권업계에서는 IB가 수행하는 다양한 분야의 투자를 ‘부동산 투기’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은 ‘금융의 효율적 자원배분 기능’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 증권사 CEO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한 리조트 등 관광 인프라에 투자하는 것도 단순히 부동산금융으로 몰아붙여 규제하면 곤란하다”며 “정상적인 부동산금융까지 위축될 경우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식의 우를 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부문이 단기간 과도하게 팽창한 점은 인정하되, 규제를 한꺼번에 급작스럽게 하기보다는 시장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순차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감원과 업계가 진행 중인 부동산 그림자금융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이 끝나는 대로 당국 차원에서 실태조사를 할 예정”이라며 “이후 업계 의견을 참고해 규정 개정 등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