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정무감각 없는' 윤석열 수난의 역사

입력 2020-01-09 15:27   수정 2020-01-09 16:19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오직 법에 따라 행동하는 검사의 모범이었으며, 박근혜-최서원(개명전 최순실) 게이트에서는 특검 수사팀장을 맡아 대한민국의 사법정의를 몸소 실천했었다는 평가를 받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6개월만에 위기를 맞았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 수사팀의 사실상 해체시키는 검찰 인사를 단행한 뒤 "검찰총장이 저의 명을 거역했다"고 말했다.

추 장관은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자신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지 않고 전날 검찰 간부 인사를 단행했다는 지적에 대해 “와서 인사 의견을 내라고 했음에도도 불구하고 검찰총장이 저의 명을 거역한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추 장관은 “인사위원회 전 30분의 시간뿐 아니라, 그 전날에도 의견을 내라고 한 바 있다. 또 한 시간 이상 전화통화를 통해 의견을 내라고 한 바 있다”면서 “지역 안배와 기수 안배를 한 인사였다. 가장 형평성 있고 균형 있는 인사라 생각한다”고 자평했다.


◆ 윤석열은 왜 '정무감각 없다' 평가를 받았나



널리 알려진대로 윤 총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댓글 조작을 했다는 정황을 수사하다 수사팀이 와해되는 일을 겪었다.

추후 드러난 국정원 내부 문건에 따르면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는 최근 남재준 국정원장 시절인 2013년 국정원이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 등에 보고한 수사 대응 문건들을 추가로 발견해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팀장 박찬호 2차장검사)에 이첩했다.

국정원은 당시 청와대에 올린 보고서에서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이끄는 검찰 댓글 특별수사팀의 인적 구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서 상당수를 교체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보고서에는 균형적인 정무감각이 부족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출신 특수통 검사들이 주도하면서 댓글 수사가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에까지 심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면서 주요 인사 계기 등이 있을 때 이들을 수사팀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건은 당시 서천호 2차장과 감찰실장이던 장호중 전 부산지검장 등 국정원 핵심 간부들로 구성된 ‘현안 TF’ 주도로 작성됐다.

2013년 당시 검찰은 윤석열을 팀장으로 특별수사팀을 꾸려 댓글 진상 규명에 나섰으나 채동욱 검찰총장이 혼외자 논란으로 사퇴하면서 외압을 막아 줄 ‘방패막이’가 사라졌다.

그럼에도 윤석열은 2013년 10월 상부 불허를 우려해 윗선 보고 없이 국정원 직원 3명을 체포하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을 추가 기소했지만, 이후 수사에서 전격 배제되고 지방 고검을 전전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러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팀장으로 발탁돼 수사 일선에 복귀했다.

◆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 총장의 충성 기대했나



한 번 마음에 담은 인사는 주변에서 말려도 반드시 임명하고 끝까지 신뢰하는 문재인 대통령식 인사스타일은 윤석열을 서울중앙지검장에 지명하고 이어 검찰총장 자리에까지 앉히는데도 고스란히 적용됐다.

2017년 문 대통령이 그를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할 때부터 여권에서는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검찰총장을 할 것"이라는 말이 나왔었다. 문 대통령은 고검 검사인 그를 서울중앙지검장에 파격 임명하면서 그 배경을 직접 언론에 설명했다. 당시 여권에서는 윤석열이 "정권을 겨냥할지도 모르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지만 문 대통령의 '결심'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의 '아는 사람' '내가 믿는 사람'만을 요직에 중용하는 인사는 '코드 인사' '회전문 돌려막기 인사'라는 비판을 계속해서 받아 왔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 대변인은 정무 감각이나 경험보다는 대통령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대통령의 생각이 반영된 인사"라고 평가했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과 윤 총장이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비리를 전방위적으로 수사하면서부터다.

문 대통령이 대선후보던 시절 그를 지지해마지 않았던 조국 교수를 민정수석에 이어 법무부장관에까지 힘겹게 앉혀놨는데 '내로남불' 비판 속에 그가 사퇴하면서 문 대통령은 물론 민주당의 지지율까지 동반 추락했다.

검찰의 조국 일가 비리 수사 강도가 갈수록 강해지던 그 때, 문 대통령은 "검찰총장에게 지시한다"는 직접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신뢰받는 권력기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추 장관이 조 전 장관 후임으로 법무부 수장으로 입성하면서 일각에서는 5선의원 출신으로 '정무감각'이 높은 추다르크가 강경하게 윤 총장에게 태클을 걸 것인지, 아니면 은연 중에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결과는 예상보다 강력한 '숙청'이었다.

윤 총장을 보좌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비리 수사를 지휘하던 대검 참모진이 모두 ‘물갈이’되자 여당을 제외한 정당에서는 '숙청', '유배 수준', '1.8 대학살'이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법무부는 추 장관 취임 후 첫 검찰 고위간부 승진·전보 인사를 통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및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 등을 수사 중인 대검찰청 지휘부 등을 대거 교체했다.

한동훈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은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박찬호 공공수사부장은 제주지검장으로, 이원석 기획조정부장은 수원고검 차장검사로 전보조치됐다.

새 서울중앙지검장에는 이성윤 법무부 검찰국장이, 신임 대검 반부패부장에는 심재철 서울남부지검 1차장검사가 각각 임명됐다.

◆ 윤석열 "MB는 측근을 구속해도 쿨했는데"



수족이 잘린 윤 총장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리면서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MB 정부가 가장 검찰 중립성을 보장해준다"했던 그의 '정무감각 떨어지는' 발언이 재조명됐다.

윤 총장은 지난해 10월 17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국정감사에서에서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 중 검찰 중립성을 보장해 준 정부를 골라달라는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망설임없이 "이명박 정부다"라고 꼽았다.

인사치례로라도 자신을 발탁해 준 문 대통령에 대한 립서비스를 할 법도 한데 그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윤 총장은 "이명박 정부 때 대검 중수부 과장, 특수부장으로 3년간 특별수사를 했다"면서 "당시 대통령 측근과 형(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을 구속할 때 (권력으로부터) 별 관여가 없었다. 상당히 쿨하게 처리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가장 중립적이다"라는 답변을 기대하고 이런 질의를 했으나 기대와는 딴판인 답변이 나오자 "자, 총장, 좋다"며 다급히 윤 총장의 말문을 막았다.

윤 총장은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는 "다 아시는 것"이라며 말을 시작하려 했지만 이 의원이 가로막아 더이상 발언하지 못했다.

윤 총장은 박근혜 정부 당시 2012년 대선 관련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팀에 몸담았다 지휘라인과 마찰을 빚어 좌천된 바 있다.

이날 이철희 의원은 이러한 윤 총장의 과거 이력을 언급하며 "대선 관련 수사하던 분 다 좌천시키던 (박근혜)정부가 중립성을 보장했느냐, (검찰총장) 임명장을 줄 때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하라'고 한 (문재인)정부가 중립성을 지켰느냐"며 "그 (박근혜)정부 때 그렇게 한 분들이 (검찰의) 중립성·독립성을 이야기하면 소가 웃을 일"이라고 말했다.

주광덕 한국당 의원이 윤 총장에게 “검사 된 이후 지금까지 검사로서 윤석열이 변한 게 있느냐”고 묻자 윤 총장은 “자부까지는 아니라도 예나 지금이나 정무감각 없는 것은 똑같은 것 같다”고 답했다.

조국 비리 수사와 청와대 하명 수사를 전담해 지휘하던 수족이 모두 '유배'됐지만 "그저 내 할 일을 했을 뿐이다"라고 애써 담담한 윤 총장은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의 말처럼 윤 총장이 훗날 검사들에게 귀감이 되는 의인으로 기억될지, 아니면 그 반대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실세의 눈치를 보는 '정권바라기' 검찰총장이 아니었다는 점 하나는 확실히 각인됐다.

◆ 향후 조국 일가 관련 수사 어떻게 진행되나


윤 총장의 수족이 잘렸다고 조 전 장관 관련 의혹 수사가 중단된 것은 아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고형곤 부장검사)는 지난달 31일 조 전 장관을 뇌물수수 등 11개 혐의로 불구속기소 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최 비서관이 조 전 장관 아들 입시비리에 연루된 정황도 새로 드러났다.

검찰이 국회에 제출한 공소장을 보면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58) 교수가 2017년 당시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로 있던 최 비서관에게 인턴 활동 확인서 작성을 부탁했다고 돼 있다.

검찰은 2017년 10월11일 자 확인서는 최 비서관이 허위로 발급해줬고, 2018년 8월7일 자 확인서는 조 전 장관이 직접 위조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검찰은 조 전 장관 자녀 기소를 앞두고 막판 법리 검토 작업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조 전 장관의 딸(29)·아들(24)은 허위로 기재된 경력이 자신의 입시에 쓰였음은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거라고 판단하고 업무방해의 공범으로 기소할지 여부를 저울질 중이다.

위조공문서행사·허위작성공문서행사 등에 대한 공범 적용은 검토 중이다. 이에 검찰은 이들이 위조까지 개입했는지 등에 대한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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