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현장에 때 이른 ‘정치 바람’이 불고 있다. 오는 4·15 총선 등 공직선거에서 만 18세가 넘는 고3 수험생 일부가 투표권을 갖게 되면서다. 각 정당은 50만여 청소년 ‘뉴권자(new+유권자)’를 겨냥해 고교 졸업생과 예비 고3 학생을 중심으로 선거 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불법 사례가 적발되는 등 과도한 ‘교실 정치화’ 문제도 눈에 띄고 있다.
졸업식 참석은 기본…교실서 명함 돌리기도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 총선 예비후보들은 지난달부터 열리고 있는 고교 졸업식에 줄지어 방문해 졸업생 등을 상대로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 경기 성남 중원구 출마를 준비 중인 윤영찬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전날 성남시 금광동 숭신여고 졸업식을 찾아 졸업생들을 만났다. 교실까지 방문해 예비 고3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방문 사실을 알리며 “제가 만난 멋진 친구들이 유권자로서 바로 선다면 우리 정치와 국가의 장래가 더욱 밝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복기왕 더불어민주당 충남 아산갑 예비후보는 이달 들어 지역구에 있는 온양여고와 아산용화고, 온양고 졸업식을 잇따라 방문했다. 복 후보는 학생들에게 일일이 나이를 물으며 투표권 행사를 요청했다. 복 후보 측근은 “관내에 있는 고교 졸업식은 모두 찾고 있다”며 “학생들이 거부감을 느낄까봐 학교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고 주로 정문 앞에서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9일 경기 수원시 영화동의 수원농생명과학고 졸업식에는 수원갑에 나란히 나선 이재준 민주당 예비후보와 이창성 자유한국당 예비후보가 각각 방문했다. 이들은 학생들과 악수하고 포옹하는 등 ‘스킨십 경쟁’을 펼쳤다. 지난 3일 충북 청주시 용암동의 청석고 졸업식에는 청주 상당구에 출사표를 던진 정정순 민주당 예비후보와 현역인 정우택 한국당 의원이 각각 참석해 학생들을 만났다.
직접 선거운동에 나서는 고교생들
고교생 유권자들이 직접 선거운동에 나서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7일 경기 안성 지역 고교생 18명은 오는 4월 치러질 안성시장 재선거에 출마한 김보라 민주당 예비후보 사무실을 방문해 김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들은 선거법 개정으로 올해 투표권이 생겼다. 학생들은 “김 예비후보가 시장이 되면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잘 듣고, 청소년이 살기 편한 안성시를 만들 것이라 생각한다”고 지지 이유를 밝혔다.
고교생들의 선거운동은 오프라인 공간을 넘어 온라인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선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난달 27일 수험생 커뮤니티사이트 ‘오르비’엔 ‘내년 총선 투표합시다’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익명으로 올린 글에서 “선거법 개정으로 선거연령이 만18세로 확대됐다”며 “모두 투표를 통해 문재인을 심판합시다”라고 썼다.
청소년 겨냥한 공약 봇물
청소년 유권자를 상대로 한 선거 운동이 치열해지면서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국당 인천시당은 인천 K고교 불법 선거운동과 관련해 “우리나라의 미래가 자라나는 교육 현장이 좌파 정치투쟁의 놀이터가 돼서는 안 된다”며 “이번 사태를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고교생 투표권 부여로 발생할 혼란에 대한 대비책을 곧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청소년 유권자를 겨냥한 ‘선심성 공약’이 잇따르는 데 대한 비판도 나온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9일 총선 1호 공약으로 ‘청년기초자산제도’를 발표했다. 만 20세 청년 전원에게 3000만원씩 ‘사회 진출 자산’을 국가가 지급하는 제도다. 이종철 새로운보수당 대변인은 이날 “돈으로 청년의 정의를 사겠다는 마음이 악하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청년 주거 지원을 위한 ‘청년 신도시’를 총선 공약으로 검토하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선거연령 하향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수험생 커뮤니티사이트 ‘수만휘’에는 지난달 28일 ‘만 18세 투표에 찬성하십니까?’라는 제목의 투표가 올라왔다. 이날까지 찬성과 반대가 30표씩 나와 선거연령 확대를 두고 학생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팽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네티즌은 댓글을 통해 “만 18세는 아직 정치를 잘 모른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경기 용인에서 만난 이모양(18)은 “고3은 대입을 준비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 다른 곳에 신경을 쓰는 게 부담스럽다”며 “인물과 공약을 고민해 투표하기는 버거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임도원/성상훈/용인=정의진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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