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이 이사장은 “예술가들이 근로자로 인식되지 않아 그들의 삶은 항상 먹고사는 것부터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충북 옥천 출신으로 홍익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이 이사장은 부산비엔날레 특별전 전시감독, 남북평화미술축전 총감독, 스페인 아르코 주빈국 조직위원회 사무국장, 정부 소장 미술품 조례개정 책임연구원, 한국문예진흥기금 평가위원, 청와대 큐레이터를 잇달아 맡으며 한국 미술의 선진화를 꾀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예총예술문화 공로상(2004), 통일부장관상(2005)을 수상했다.
이 이사장은 책에서 건강한 예술 생태계 구축을 위한 시스템을 내실있게 다지는 방안을 모색하는 데 집중했다. 지난 30년간 미술 현장에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화가들의 권익과 국민의 문화향유권, 미술인의 복지를 실현할 방법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그는 “문화예술정책은 특정 분야와 직능, 계층만 지원하자는 게 아니다”며 “전체 국민의 문화향유권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했고, 그 안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예술인을 ‘특수근로자’로 보고 4대 보험 등 최소한의 법적 안전망을 보장하는 게 시급하다”며 “미술품으로 세금을 낼 수 있도록 하는 ‘조세 물납제’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작품이나 애호가들의 소장품을 세금으로 낼 수 있다면 납세 의무를 다하면서도 시장 활성화를 꾀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국회에 청원까지 했다. ‘예술인은 창작근로자’라는 인식이 사회적·제도적으로 자리잡아야 열악한 창작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는 생각도 작용했다. “화가들이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미술품이 법적 재화로서의 가치를 부여받을 수 없는 실정입니다. 그림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받기조차 어려워요. 미국과 프랑스 등에서는 미술품을 세금으로 납부할 수 있는 동산(動産)으로 간주합니다. 세금 포탈 사범의 재산을 압류할 때 그림이 포함돼 있는 것을 보면 안 될 이유도 없어요.”
이 이사장은 동료 화가들의 일상은 물론 화가의 생활고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소재로 삼았다. 그는 “화단에 ‘미술인이라 적고 무직이라 읽는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8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인이 예술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입은 지난해 평균 1281만원에 머물렀다. 화가의 연평균 수입은 868만8000원이었다. 한 달에 80만원도 안 되는 수입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2012년부터 시행된 예술인 복지법이 미술가 같은 순수예술인을 도리어 소외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술인 복지법은 전문 예술인과 아마추어 예술인을 구분하지 않아요. 전문 미술인이 문화센터나 주민센터에서 취미 삼아 예술을 배운 아마추어 예술인과 차등 없는 지원을 받는다는 데 상실감이 큽니다.” 순수 예술인의 열악한 환경에 초점을 맞춰 법규가 개선돼야 한다는 얘기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고민은 최근 미술시장 침체에 따른 예술인의 생계”라고 그는 걱정했다. 정부의 미술품 양도세 강화 방침, 기업의 미술분야 지원 감소, 삼성미술관 리움의 개점 휴업 장기화로 미술시장이 맥을 못 추고 있어서다. 이 이사장은 “문화 향유는 누구나 추구해야 할 행복 중 하나로 먼저 작가들이 먹고살 수 있어야 가능하다”며 “문화애호가와 작가들이 상생할 수 있는 선진국형 시장을 조성해가고 싶다”고 희망했다.
그는 이런 국민의 문화향유권 보장이라는 정책 과제를 폭넓게 실천하기 위해 다음달 중순 한국문화예술단체 총연합회장(예총) 선거에 출마할 예정이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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