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한국의 고용사정은 정부의 낙관적인 주장에도 불구하고 미·일 등 선진국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청년층의 체감실업률은 역대 최고치인 23.1%를 기록했고, 비정규직도 작년에 87만 명 늘어 고용의 질적 수준도 크게 떨어졌다. 특히 대졸 고급인력의 취업절벽은 절망적으로 가파르다. 서류를 50개 넣어야 겨우 3개쯤 면접에 올라가고, 그중 1개만 합격이 아슬아슬해서 ‘50-3-1의 법칙’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유치원 때부터 그렇게 공부에 시달리며 치열한 경쟁을 뚫고 명문대에 입성한 성공 스토리도 취업절벽 앞에서는 기를 펴지 못한다. 어디 그뿐인가. 학점관리는 기본이고 인턴과 해외연수, 각종 자격증 등 온갖 스펙을 쌓아도 그 높은 절벽을 건너기 힘들다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수십 년 동안 엄청난 시간과 재원을 투자해 대학을 마친 상위 몇 %의 인재들이 실업자로 전전긍긍하고 있으니, 개인적인 좌절을 넘어 얼마나 큰 국가적 손실인가. 그렇다고 재능과 학업능력이 선진국보다 열악한 것도 아니다. 이런 나라가 청소년에게 무슨 꿈을 심어줄 수 있겠는가. 300만원의 취업준비금으로 위로할 수도 없고, 편법 통계로 진실을 가릴 수도 없다. 대외여건을 탓하며 응급처방에만 매달리지 말고, 당장 구조적 대안을 개발하지 않으면 10~20년 뒤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경직적인 대학정책이 고학력 실업자를 양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SW) 전공 분야 하나만 생각해보자. 취업절벽의 와중에도 SW 전공자에게는 ‘50-3-1’의 법칙이 완전히 거꾸로 적용되고 있다. 이 분야는 미국에서만 올해 100만 명이 부족하다니, 당장 수만 명이 쏟아져 나와도 일자리 걱정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엄격한 대학 정원 동결로 SW 전공자 수가 10여 년째 그대로 묶여 있다. 청소년들이 산업계 수요가 폭증하는 첨단 분야에 지망할 기회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아무리 ‘인구론’(人九論: 인문학 전공자의 90%가 일자리를 못 찾는 현실을 빗댄 말)이 팽배하고 학문 간 융합이 대세를 이뤄도 한국은 여전히 문과와 이과를 엄격히 분리하고, 학과 간 높은 장벽을 쌓는 관행을 답습하고 있다. 대학이 스스로 혁신해야 하지만 정원 한 명, 학과 하나 자유롭게 늘릴 수 없기 때문이다. 등록금이 12년째 동결돼 유치원보다 낮은 대학이 있다니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겠는가. 산업 혁신을 선도하는 교육은커녕 우수한 교원조차 유치하기 힘든 형편이다.
대학교육은 점차 하향 평준화되고, 졸업장만을 위한 저급 소모품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그 결과 대졸자는 차고 넘치지만, 정작 산업 트렌드에 적응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가 생산량과 가격을 10여 년간 모두 동결한다면 그 기업에서 어떤 제품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교육정책을 획기적으로 전환해 대학에 전면적인 자율성을 부여하지 않는 한, 대졸 실업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대학이 산업 흐름에 맞는 분야의 정원을 자율적으로 조정하도록 해 청소년들이 제대로 된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정부가 간헐적으로 인공지능(AI) 대학원과 같은 첨단 분야를 지원하기도 하지만, 일회성 재정지원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획일적인 규제정책은 대학교육을 황폐화하고 산업 현장과 괴리된 대졸 실업자만 양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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