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서를 통해 저절로 생성되고 기록되는 액티브 데이터와 이에 기반한 AI는 지난 100년간 전기가 산업에 끼친 영향에 맞먹는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미 AI는 빠른 성장기에 접어들었으며, 2030년에는 산업 전반에서 약 15조7000억달러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전망이다.
아쉽게도 산업의 새로운 흐름에 우리의 대응 역량은 부족하다. AI 기술경쟁력은 미국의 82% 수준에 불과하고, 빅데이터 이용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국 중 27위에 머물러 있다. 세계 정보기술(IT)산업을 주도해온 우리 기업들이 정작 디지털 변혁에서는 뒤처진 것이다. 지난해 정부가 ‘제조업 르네상스’를 선언하고 ‘AI 국가전략’을 발표한 것도 이런 문제 의식과 위기감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산업이 직면한 문제들이 과연 정부 주도로 몇몇 산업을 육성하고 특정 기술을 확보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 사태가 소재·부품·장비산업의 구조적 문제로 귀결됐듯이 허약한 기술혁신 생태계에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새로운 산업구조를 지배하는 경쟁의 본질은 폐쇄에서 개방으로, 독자에서 협력으로, 일방향에서 양방향으로 전환됐다. 경쟁의 단위도 단일 기업 간 경쟁에서 생태계 간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기존에 볼 수 없던 플랫폼 사업자들이 등장해 각자의 생태계를 조성하고 글로벌 산업 패권을 좌우하는 게 현실이다.
독일이 제조업 부흥전략으로 기업 중심의 협의체인 ‘인더스트리 4.0’을 구성해 제조업 혁신을 논의하는 것이나, 데이터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업 스스로 데이터거래 플랫폼인 IDSA(International Data Spaces Association)를 통해 유스 케이스(use case)를 공유하는 것도 이 같은 새로운 경쟁 질서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노력이라 할 수 있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도 6만5000개 기술혁신 기업의 의견을 모아 발표한 정책건의서 ‘산업기술혁신 2030’에서 민간 중심 협의체를 구성해 4차 산업혁명 대응 아젠다를 선제적으로 제시하고, 정부가 이를 채택하는 새로운 기술혁신 체제를 제안했다.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고 했다. 우리도 혁신의 새 지평을 만들어 가야 한다. 기존 인하우스(in-house) 중심의 폐쇄적이며 배타적인 기술혁신에서 벗어나, 공유하고 협력하는 ‘개방형 혁신(오픈 이노베이션)’의 생태계 조성이 그것이다.
늦은 감은 있지만, 혁신을 이끌고 있는 기업이 나서서 산업의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과 같이 정부 주도의 논의나 몇몇 기업을 중심으로 한 폐쇄적인 협력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산업계 전반이 참여하는 본격적인 논의의 장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첫발로 시장에서 디지털 변혁을 선도하는 기업들이 중심이 돼 한국형 디지털 변혁을 논의하는 협의체 구성을 추진해보자. 이를 통해 협력의 새로운 모델을 정립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디지털 간극 해소, 한정된 데이터 자원의 공유 및 활용을 극대화하는 생태계 모색이 필요하다. 나아가 우리 기업의 기술혁신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한 진지한 논의도 가능할 것이다.
지난 한 해, 글로벌 경제 패권을 두고 중국과 미국의 첨예한 대립이 세계 경제의 판을 뒤흔들었다. 산업 재편이 가속화되면 이 같은 거대한 힘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그 격동의 시간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힘을 모으는 지혜가 필요하다.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는 2020년이 한국 산업의 새 장을 여는 디지털 변혁의 원년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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