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CEO들 "창업 초기, 바퀴벌레처럼 살며 비용 줄여야"

입력 2020-01-13 15:06   수정 2020-01-13 16:06


“상식적으로 성공하기 어렵다고 했던 사업 모델들이 실리콘밸리에선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성공전략을 답습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김동신 샌드버드 대표)

“펀딩(투자 유치)을 받자마자 직원 뽑고 사무실 옮기는 스타트업에 미래는 없습니다.”(윤필구 빅베이신캐피탈 대표)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20’이 폐막한 지난 10일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 대표들이 샌프란시스코에서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주제로 ‘토크 콘서트’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공통적으로 “스타트업 초기 단계부터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고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얘기했다. 미국, 중국 등 자국 시장에서 덩치를 키운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을 공략해 올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스타트업들의 글로벌 사업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사업 초기부터 해외 전략 구상”


김동신 대표는 이날 ‘실리콘밸리의 유니콘 기업 사례’라는 주제 발표에서 “게임 동영상 플랫폼 트위치, 자율주행 플랫폼 크루즈 등 과거 인수 당시엔 과도하게 비싼 가격에 팔렸다고 평가받던 기업들이 승승장구하는 소위 ‘미친 성공’ 사례가 퍼지고 있다”며 “과거의 성공을 뇌에서 지우지 않는다면 미래에 성공하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아마존이 2014년 트위치를 9억7000만달러에 인수하고 제너럴모터스(GM)가 2016년 크루즈를 10억달러에 인수할 당시엔 과도한 몸값이라고 비판받았지만 현재는 ‘한발 앞선 투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트위치의 창업주 칸 형제를 직접 만나보면 ‘우리랑 크게 다르지 않구나,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며 “이런 분위기가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이 새로운 사업에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고 말했다.

안익진 몰로코 대표는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마케팅할 수 있는 현지 인력이 필요하다”며 “사람, 기술, 시장이 모여 있는 실리콘밸리가 글로벌 사업을 하기 위한 최적의 거점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를 통한 맞춤형 기업 광고 데이터를 제공하는 몰로코는 현재 전체 매출의 65%가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다. 김동신 대표는 “다이얼패드, 아이러브스쿨, 싸이월드, 판도라TV 등 글로벌 기업이 국내로 들어오고 나서 사라지거나 위축된 국내 IT업체들이 그동안 수없이 많다”며 “사업 시작 단계에서 꼭 미국 시장이 아니더라도 해외로 진출할 시장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브라이언 강 노틸러스벤처파트너스 대표는 “이스라엘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대기업의 인수합병(M&A) 타깃이 되는 이유 중 하나는 투자와 관련된 법률과 프로세스가 미국과 거의 같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치는 실패의 지름길

기업 문화의 중요성도 여러 차례 강조됐다. 윤필구 빅베이신캐피탈 대표는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으로 성장한 업체들은 창업 초기 생존을 위해 사무실 월세 비용도 아낀다”며 “바퀴벌레처럼 살아도 일단 생존해야 한다는 절실함이 성공을 담보한다”고 했다. 그는 “펀딩(투자 유치)을 받고 나서 직원 뽑고 사무실 옮기는 스타트업은 대부분 오래가지 않더라”고 덧붙였다. 팀 채 500스타트업 공동대표는 “스타트업을 만나보면 회의 다음 날 곧바로 결정하고 실행하는 스타트업과 6개월 뒤에 만나도 같은 얘기를 하는 스타트업 등 두 가지 유형이 있다”며 “대체적으로 후자는 실패하더라”고 전했다.

음재훈 트랜스링크캐피탈 대표는 “실리콘밸리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가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의 창업”이라며 “대학을 중퇴하고 창업해서 성공한 사례는 미국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회장 이후 30년 만에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가 나올 정도로 확률이 매우 낮다”고 말했다. 이어 “직장에서 어느 정도 전문성과 인사이트를 기른 후 창업해도 늦지 않다”고 강조했다. 김태미 휴머니즈 대표는 “창업에 실패한 경험이 회사 취직을 위한 경력서에 플러스가 되는 문화가 창업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의 지원에 대한 요청도 많았다. 음 대표는 “한국에 법인을 세우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부 지원을 획일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사실상 역차별”이라며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위해서라면 한국보다 해외에서 먼저 법인을 세울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샌프란시스코=좌동욱 특파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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