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겨울이 어업의 달력과 지도를 바꿔놓고 있다. 수온 상승으로 제철 생선이 달라지고, 특정 어종이 주로 잡히는 해안도 변화하고 있다.
동해 3대 수산물도 바뀌고
지난 12일 강원도 속초와 주문진 일대의 횟집의 수족관에는 겨울 동해의 상징이던 오징어 대신 방어로 가득 차 있었다. 방어는 지방이 차오르고 기생충이 죽는 겨울에 가장 맛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겨울 주산지는 제주도였다. ‘겨울 대방어’는 오랫동안 제주 특산물이었다. 작년부터 방어는 동해의 특산물이 됐다. 수온이 올라 제주로 내려가지 않고 동해에 머물면서 지난해 경북 울진과 영덕 일대에서만 약 3500t의 방어가 잡혔다. 지난 12월 제주 모슬포에서 열린 방어 축제에는 동해에서 잡은 방어를 보내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이는 동해 3대 수산물 ‘붉은 대게·오징어·명태’까지 바꿔놨다. 지금은 명태의 자리를 방어가 차지했다. 오징어도 어획량이 급감하면서 탈락 위기에 놓였다.
金치 된 곰치
겨울 별미로 남해 일대에서 많이 잡히는 한대성 어종인 물메기(물곰 또는 곰치로도 불림) 어획량도 3년새 5분의 1로 줄었다. 거제 6개 수협 위판장에서 물메기는 2017년 12만7716㎏이 팔렸지만 지난해 2만6722㎏으로 급감했다. 현지에서는 1마리당 20만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곰치가 금(金)치가 됐다”는 말도 나온다. 물메기는 겨울철 산란을 위해 연안으로 왔다가 잡히는데 수온 영향으로 회귀 시점이 늦춰져 어획량이 급감했다는 분석이다. 1년만 사는 단년생 어종인데 마구잡이로 어획해 치어가 줄어든 것도 영향을 미쳤다.
강원도 일대에서 수십 년간 곰치국만 전문으로 팔아온 속초 일대 상인들은 울상이다. 올해는 생물 물메기를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ㄷ식당 관계자는 “올 겨울 들어 재료가 떨어져 점심 장사만 겨우 하고 있다”고 말했다. ㅅ식당은 지난해 1인분에 1만5000원이던 곰치국 가격을 1만7000원으로 올렸다.
어업지도 대전환…“골든타임 지켜야”
바닷물의 온도 변화는 전국의 어업지도를 바꿔놓고 있다. 오징어와 명태, 대구는 동해안에서 어획량이 점점 줄고 있다. 오징어는 서해에서 더 많이 잡힌다. 서해에는 오징어와 대구잡이 어장까지 따로 형성됐다. 겨울 평균 수온은 서해가 동해보다 약5℃ 가량 낮아 냉대성 어종들이 대거 동해에서 서해로 겨울 서식지를 옮겼다는 분석이다.
멸치잡이 어선들의 조업 시기와 장소도 바뀌고 있다. 보통 7월 초 출항하는 멸치잡이 배들은 2~3년 전부터 6월중순께로 날짜를 당겼다. 연안 바닷물이 따뜻해 멸치들이 멀리 간 멸치를 잡기 위해 출항 시기를 당겼다는 얘기다. 꽃게잡는 어부들도 수온 상승으로 울상이다. 꽃게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알과 살이 차오른다. 수온이 올라 작년 어획량도 2017년의 30~40%에 그쳤고, 그나마 잡힌 것도 살이 거의 차지 않아 제값을 못 받았다.
‘제철’도 ‘산지’도 사라졌다
올 겨울 바닷물은 유난히 따뜻했다. 통상 수온 1℃ 변화는 육상의 기온 5℃ 이상 변화와 맞먹는 것으로 본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지난 12월 전국 연안 바다의 수온은 평균 9.1℃~18.9℃였다. 강릉, 포항, 부산의 월평균 수온은 15℃~15.8℃로 평년에 비해 최고 2.2℃ 높았다. 남해 연안과 통영, 여수, 제주도도 평년에 비해 1.3~1.8℃ 높은 고온 현상을 보였다. 서해안도 9.1℃~11.1℃로 평년에 비해 1.4~1.9℃ 높았다. 전국 바다의 근해 수온도 1℃이상 높게 나타났다. 고우진 국립수산과학원 기후변화연구과장은 “1월 연안 수온도 평년보다 1℃내외로 높게 유지될 것”이라며 “주문진 등 동해안 연안 일부는 최대 2.5℃가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현장에서는 빠른 대처와 새로운 어업 지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휴어기’와 ‘금어기’ 등 의미 없는 규제만 할 것이 아니라 매달 더 세분화된 어종 관리 지침을 내놔야 한다는 주장이다. 어종 구분없이 쌍끌이 조업을 가능하게 하는 ‘안강망’ 조업에 대한 비판도 많다. 해당 수역의 모든 어족 자원을 무분별하게 어획하고 있어 치어나 보호어종을 관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성·속초=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