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메콩 국가들과의 협력에 중점을 두는 이유는 이들 국가가 연 6%대의 높은 경제성장을 지속하고 있어 발전 가능성이 크고, 중국 및 인도와 연결되는 지정학적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과 메콩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상호보완적이고, 문화적으로도 많은 유사성을 갖고 있어 협력 가능성이 크다. 제1차 정상회의 결과 채택된 ‘한강·메콩강 선언’은 한·메콩 협력의 미래 비전과 구체적 협력 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인적 자원 개발, 농업·농촌 개발, 인프라, 정보통신기술, 환경 등 7개 우선 협력 분야를 설정하고 한·메콩협력기금 및 공적 개발원조(ODA) 확대, 2021년 ‘한·메콩 교류의 해’ 지정 등을 통해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메콩 국가의 특징 중 하나는 불교 국가라는 공통분모가 있다는 점이다. 베트남을 제외한 모든 국가 인구의 90% 이상이 불교도다. 태국과 캄보디아는 불교가 국교로 지정돼 있다. 태국 헌법에는 ‘국왕은 불교도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고, 미얀마에는 ‘미얀마 사람이 되려면 불자가 돼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메콩 국가의 불교는 대승불교와는 다른 ‘상좌부(上座部)불교’다. 베트남 중·북부 지역만이 중국 불교의 영향을 받아 대승불교 성격을 띠고 있다. 상좌부불교가 정착되기 전 동남아시아에는 힌두교와 대승불교가 유입돼 있었다. 상좌부불교는 종주국 스리랑카로부터 11세기 미얀마에, 13세기 태국에 전래됐다. 캄보디아에는 힌두교와 대승불교가 혼합된 종교를 믿었던 앙코르 왕국이 14세기 태국의 침공으로 멸망하면서 상좌부불교가 정착됐다.
인구 90% 이상이 불교도
붓다는 기원전 6세기 오늘날의 인도 북쪽, 네팔 남쪽 카필라국의 왕자로 태어났다. 29세 때 출가해 35세에 깨달음을 얻었다. 붓다의 입멸 직후 그 가르침을 정리한 제1차 결집이 이뤄지지만, 경전이 팔리어(인도 방언)로 최초 문자화된 것은 붓다 입멸 200년 후 인도를 처음으로 통일한 아소카왕에 의해서였다. 그는 불교 전도단을 9개 국가에 파견해 북인도에 한정됐던 교세를 전 세계로 확산시켰다. 실론(현 스리랑카)에 그의 아들 마힌다 장로를 파견했다. 그 후 실론의 상좌부불교는 동남아 상좌부불교의 모태가 됐다.
상좌부불교는 대승불교에서 소승불교라 부르는 여러 부파(部派) 중 유일하게 현존한다. ‘상좌(Thera), 즉 장로에 의해 이어져 온 붓다의 설법’이란 의미다. 대승불교가 중생 구제에 중점을 두는 데 비해 개개인의 수행과 해탈을 중시한다. 인간의 일생은 전생의 업(karma)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며, 미래를 위해 현세에서 공덕을 쌓을 것을 강조한다.
역사적으로 승가(불교 교단)와 정치 권력은 관계가 밀접했다. 왕권은 불교에 의해 정당성을 확보하고, 승가는 이를 통해 국가 권력의 후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서구 세력의 식민지배를 받게 되면서 불교와 승가의 영향력이 약화됐다. 미얀마의 경우 영국이 비불교도 소수 종족을 개종시켜 식민통치에 이용하자 승려들이 주체가 돼 반(反)식민 민족주의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유일하게 식민지배를 받지 않은 태국은 불교개혁운동을 통해 전통적인 불교 왕권을 강화해 왕권과 승가는 더욱 밀착됐다.
상좌부불교의 특성에 주목해야
식민지배로부터 독립한 메콩 국가들은 내전, 공산화 등 각기 다른 정치 변동을 겪었다.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가 불교사회주의를 추구한 점이 특기할 만하다. 마르크스주의가 유물론에 근거하는 데 비해 불교는 유심론적 입장이 강해 서로 대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식민세력이던 서구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개념으로서의 사회주의가 전통적인 불교 가치에 부합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내용 면에서도 불교와 사회주의는 평등사상, 개인의 소유보다는 공동체적 소유를 중시하는 점, 물질적 고통을 해결하고 정신적인 행복을 추구한다는 점 등에서 유사하다.
메콩 국가들이 국가 발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불교의 내세 지향적 성격과 업에 근거한 운명결정론은 부정적인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경제 행위의 본질적 목적이 물질 추구가 아니라 행복 추구임을 강조하는 불교의 가르침은 현대 시장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메콩 국가들은 새로운 도약을 꿈꾸며 한국과의 협력을 바라고 있다. ‘한강의 기적’이 ‘메콩강의 기적’으로 연결되기 위해서 우리는 그들의 여망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서로에 대한 이해가 그 시작이라는 점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김영선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前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