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대전MBC에서 계약직 사원으로 근무하다 2010~2011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근로자 7명이 낸 소송에서 정규직과 같은 취업규칙을 적용하라고 지난달 24일 판결했다. 정규직보다 덜 준 임금·수당·복리후생비 등을 지급하고 승진을 포함한 기타 처우도 정규직과 동일하게 해줘야 한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20만 명을 웃도는 공공부문 무기계약직에서 비슷한 소송이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민간기업까지 확산할 경우 파장은 더 커질 전망이다.
무기계약직도 정규직과 동일 처우
계약기간이 정해진 기간제 근로자로 입사했더라도 2년 이상 근무하면 비정규직법에 따라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에 따라 비기간제 근로자는 원칙적으로는 정규직과 같지만 임금과 수당 등은 덜 받아 무기계약직으로 불린다. 정년 보장 등 고용안정 측면에서는 기간제 근로자보다 안정적이지만 급여와 수당 등은 정규직과 차이가 있어 ‘중규직’이라고도 불린다. 노동계는 그동안 비정규직 차별금지 대상에 중규직도 포함해야 한다며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왔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중규직 차별금지 요구를 수용한 것이어서 ‘친노동’ 판결로 해석된다. 원고인 대전MBC 무기계약직 7명은 전국언론노동조합 대전문화방송본부 계약직분회 소속으로 1995년에서 2001년 입사한 이후 1년 또는 2년마다 근로계약을 갱신하다가 2010년과 2011년 비정규직법에 따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전환 후에도 계속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임금·상여금은 정규직의 80% 정도만 받았다. 월 자가운전비는 20만원으로 정규직에 비해 10만원 적었다. 근속연수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 근속수당은 전혀 없었다. 승진 및 부서장 보직 등도 정규직과 달리 적용받지 못했다. 무기계약직들은 정규직보다 덜 받은 임금·수당 등을 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대전지방법원은 무기계약직의 손을 들어줬다. 위법한 차별로 본 것이다. 그런데 2심 대전고등법원은 근속수당 및 복리후생비 차등 지급은 위법이지만 임금·상여금 기준이 다른 것은 합법이라고 봤다. 공개경쟁 시험을 통해 입사한 정규직과 달리 추천, 실기테스트, 면접 등만으로 입사했다는 점에서다. 입사 및 승진 경로가 달라 같은 기준을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수당과 복리후생비는 물론 임금·상여금 차별도 위법이라고 판단하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무기계약직도 정규직과 동일한 취업규칙을 적용하라는 취지다.
무기계약직 있는 사업장 비상
무기계약직이 있는 대다수 사업장은 비상이 걸렸다. 비슷한 소송이 제기되면 임금과 각종 수당에서 정규직보다 덜 준 액수를 모두 지급해야 할 상황이다. 채용방식 임금체계 등 인사 관련 시스템도 전면 수정해야 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으로 공공부문의 무기계약직 근로자는 21만2000여 명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강력하게 추진한 공공기관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라 기간제 근로자가 정규직(무기계약직 포함)으로 전환된 사례가 늘어 무기계약직 숫자는 이보다 많아졌을 것으로 추산된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338개 공공기관의 무기계약직은 2013년 3.9%에서 2016년 5.4%까지 완만하게 증가하다 2017년 이후 크게 증가해 2018년에는 10.0%에 이른다. 공기업 근로자 10명 가운데 1명이 무기계약직이란 의미다. 민간 기업의 경우 무기계약직 근로자 수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도 없다. 한국 노동시장에서 공공부문 일자리가 전체의 9%임을 감안해 무기계약직 수를 200만 명 이상으로 추산하는 전문가도 있다.
무기계약직에 대한 임금·수당의 차등 지급은 물론 승진 및 보직 등에서 차별이 있었다면 소송이 제기되면 패소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형로펌 노동전문 변호사는 “정기 공채로 입사한 정규직과 추천과 면접을 거쳐 들어온 무기계약직 간 차별을 없애면 또 다른 공정성 시비가 불거질 수 있다”며 “공채 관행에도 큰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첫 방문해 공공부문 정규직화의 대명사가 된 인천공항에서 기존 근로자와 정규직 전환자 사이에서 벌어진 노노 간 갈등의 배경이 공정성 문제였다. 채용방식과 경력관리 경로가 다른데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되레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최종석 전문위원 js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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