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법인세 세율…'라이벌' 인텔의 2.4배

입력 2020-01-16 17:38   수정 2020-01-17 01:13


삼성전자의 작년 1~3분기 법인세 유효세율(법인세비용÷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이 반도체 라이벌인 미국 인텔보다 2.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2년 전 법인세 최고 세율을 35%에서 21%로 낮추고 각종 공제를 늘린 반면 한국은 ‘정반대의 길’(법인세율 22%→25% 인상, 대기업 공제 축소)을 택한 여파다. 경쟁국보다 큰 법인세 부담 탓에 글로벌 기업들과 싸우는 한국 기업의 경쟁력 저하 우려가 커지고 있다.

16일 한국경제신문이 한국경제연구원에 의뢰해 한·미 주요 기업의 작년 1~3분기 법인세 유효세율을 추산한 결과 삼성전자는 27.3%로, 인텔(11.6%)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2017년에는 인텔의 유효세율(52.8%)이 삼성전자(24.9%)보다 두 배 이상 높았지만 지금은 정반대가 됐다.

삼성전자는 작년 1~3분기에 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연결재무제표 기준) 194억달러를 거뒀지만 법인세비용이 53억달러나 붙은 탓에 당기순이익은 141억달러에 그쳤다. 인텔의 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159억달러)은 삼성전자보다 20% 적었지만 법인세비용이 18억달러에 그친 덕분에 당기순이익(141억달러)은 삼성전자와 같았다.

삼성전자의 법인세 유효세율은 마이크로소프트(8.7%) 애플(15.6%) 아마존(16.0%) 구글(18.1%)보다도 훨씬 높았다. 같은 기간 기아자동차의 법인세 유효세율(27.7%)이 미국 제너럴모터스(12.0%)의 2.3배에 달하는 등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한국 기업의 세 부담이 더 무거워진 것으로 나타났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톱10'이 법인세 4분의 1 부담…"이익 많이 냈다고 벌 주는 꼴"
대기업에 '법인세 쏠림'…脫한국·자본유출 부추겨


법인세를 둘러싼 미국 기업과 한국 기업의 운명이 바뀐 건 2017년 여름부터 초가을로 접어드는 시점이었다. 그해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8월 세제개편안을 발표하면서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지방세 포함 시 24.2%)에서 25%(27.5%)로 끌어올렸다. 그 이유는 “대기업으로부터 세금을 더 거둬 복지재원으로 쓰겠다”는 것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생각은 달랐다. “투자와 고용을 늘리려면 세율을 낮춰야 한다”며 그해 9월 법인세 최고세율을 35%에서 21%로 끌어내렸다. 대기업일수록 혜택이 컸다.

한국과 미국의 법인세율은 그렇게 사상 처음으로 역전됐고, 미국발(發) ‘감세경쟁’은 프랑스 일본 스웨덴 인도 중국 등 전 세계로 확산됐다. 한국 정부의 ‘역주행’은 고스란히 한국 기업들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한국만 거꾸로 가는 기업세제

1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36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지난 10년 동안(2010년 대비 2019년) 20개국이 법인세 최고세율(지방세 포함)을 내렸다. 올린 나라는 9개국에 그쳤다. 그리스 포르투갈 칠레 터키 라트비아 등 주로 경제상황이 나쁜 나라들이었다.

선진국들은 대부분 법인세를 내렸다. 자국 기업의 해외 이전을 막고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선 그만한 ‘매력 포인트’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급속한 고령화로 재정이 흔들리고 있는 일본(39.5%→29.7%)은 물론 복지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높은 세율을 유지하고 있는 스웨덴(26.3%→21.4%), 노르웨이(28.0%→22.0%), 덴마크(25.0%→22.0%) 등 북유럽 선진국마저 법인세 인하 행렬에 동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념은 문제되지 않았다. 중국은 법인세를 25%에서 20%로 단계적으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사회주의 색채가 짙은 프랑스도 올해 법인세를 31%에서 28%로 내리기로 했다. 국민이 나서 정부의 법인세 인상 계획을 막기도 한다. 작년 5월 스위스 정부는 법인세 인상 여부를 묻는 투표를 했는데 국민의 3분의 2(66.4%)가 반대표를 던졌다.

주요국 중 ‘역방향’을 선택한 건 한국뿐이었다. 2016년까지 한국의 법인세율(24.2%)은 OECD 회원국 평균(24.4%)보다 낮았지만, 지금은 OECD 평균(23.5%)보다 4%포인트나 높다. 홍성일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팀장은 “글로벌 트렌드에 역행하는 한국의 법인세율 인상은 기업의 ‘탈(脫)한국’과 자본 유출을 부추길 수 있다”고 말했다.


소수의 대기업에 법인세 부담 집중

법인세도 소득세처럼 돈 잘 버는 극소수가 대부분의 세금을 낸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7년 신고 기준으로 흑자를 낸 45만8000개 법인 중 30여 개 대기업집단(자산 10조원 이상인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기업이 전체 법인세의 34.7%를 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톱10’ 기업의 비중은 22.8%에 달했다. 2017년 대기업집단과 톱10 기업의 법인세 부담 비중이 각각 27.7%와 14.1%였던 점을 감안하면 1년 만에 7.0%포인트와 8.7%포인트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소수의 대기업에 법인세 부담이 집중되는 ‘쏠림 현상’의 원인 중 하나로 누진제를 꼽는다. 한국은 △과세표준 2억원 이하 10% △2억원 초과~200억원 20% △200억원 초과~3000억원 22% △3000억원 초과 25% 등 4단계로 법인세를 매긴다. 이로 인해 2018년 톱10 기업의 유효세율(24.9%·법인세비용÷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은 전체 기업 평균(19.8%)보다 5.1%포인트 높았다. “이익을 많이 내는 기업에 벌을 주는 구조”란 하소연이 재계에서 나오는 배경이다. 36개 OECD 회원국 중에서 이런 나라는 한국과 포르투갈뿐이다. 미국 등 31개국은 이익 규모와 관계없이 단일세율로 부과한다. 나머지 국가도 2~3단계로 한국보다 단순하다. 이익을 많이 냈다고 높은 세율을 적용하면 알짜기업을 내쫓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출신인 김낙회 전 관세청장은 “한국의 기업환경이 경쟁국에 비해 좋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법인세율은 이들 국가보다 1~2%포인트 낮게 유지해야 한다”며 “각종 투자 공제도 기업 규모에 따라 차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오상헌/이태훈 기자 ohye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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