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준비하는 내내 ‘사랑 없는 고통은 있어도 고통 없는 사랑은 있을 수 없다’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고통을 이해해야 진정 사랑을 이해할 수 있죠. 제 시는 다양한 자기 고통을 이해하는 하나의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고희(古稀)를 맞은 정호승 시인(70)은 등단 47년째인 자신의 시 세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최근 펴낸 열세 번째 시집 《당신을 찾아서》(창비)의 출간을 기념해 지난 13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다.
국내 대표 서정 시인으로 꼽히는 정 시인은 사랑과 고통을 노래하며 삶을 위로하고 인생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시들을 써 왔다. 2017년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창비) 이후 3년 만에 펴낸 이번 시집에는 모두 125편이 실렸다. 이 가운데 신작 시가 딱 100편이다. 그는 “지난해 7~9월 약 3개월간 100편을 거의 몰아 썼다”며 “크게 기댔던 어머니가 지난해 3월 돌아가시면서 황량한 들판에 서 있는 듯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마음을 시로 다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 시인은 이번 시집의 화두를 ‘고통’이라고 했다. ‘새벽별 중에서/가장 맑고 밝은 별은/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새벽별 중에서/가장 어둡고 슬픈 별은/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새벽별’)라는 시구는 그가 생각하는 사랑과 고통의 본질을 잘 드러낸다. 왜 고통일까. “누군가를 사랑하면 거기엔 반드시 고통이 따르죠. 고통이 없기를 바라는 건 사랑하지 않는 것과 같아요. 이런 인간의 고통과 비극을 이해하는 과정을 언어라는 도구로 나타낸 게 시입니다.”
이번 시집에는 유독 ‘새’가 시적 소재로 많이 등장한다. 정 시인은 새가 자신과 동일한 존재라고 설명했다. “집 앞에 있는 새들에게 모이를 주면 한참을 둘러보고 경계하다 겨우 한두 알 먹고 날아가요. 자기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불안한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새처럼 순간순간이 불안하고 작은 존재지만 그 존재를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는 삶을 살죠.”
정 시인은 또 유다와 장례미사, 고해성사 등을 소재로 한 천주교적 묵상부터 불교적 직관, 도교적 달관 등 종교를 아우르는 생각을 시로 묶어냈다. 가장 애착 가는 시로 ‘당신을 찾아서’를 꼽았다. 3세기 로마 가톨릭 사제들에 의해 참수돼 순교한 프랑스 파리 초대 주교 생드니가 자신의 머리를 들고 고통스럽게 걸어가는 모습을 그려낸 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종교적입니다. 인간은 고통의 존재기 때문이죠. 물속에 살면서도 목말라하는 물고기가 물 밖에 나오면 죽습니다. 인간도 고해와 고통의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라는 것을 부처는 일찍이 간파했어요. 그 고통을 이해해야만 진정한 사랑을 이해하고, 또 인간의 삶과 존재 가치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가 시 안에서 말하는 고통은 끝내 용서의 문제와 맞부딪친다. ‘인생이라는 강을 건너가기 위해서는/왜 용서라는 징검다리를 건너가지 않으면 안 되는지’(‘유다를 만난 저녁’ 중) 말하고 ‘당신을 용서하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에요’(‘마지막을 위하여’ 중)라며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고통은 용서를 통해 치유됩니다. 그동안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머니를 잃고 나서야 무조건성, 무한성, 절대성, 용서, 희생을 모두 담고 있는 모성애의 본질을 제대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의 고통 중 가장 실천하기 힘든 부분이 용서입니다.”
정 시인은 “죽을 때가 돼서야 용서를 청하고 받게 되는 게 인간의 한계지만 그러니까 또 인간”이라며 고통과 용서가 결국 생명과 연결된다는 점을 찾아낸다. “고통은 생명을 의미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고통에 감사해야 해요. 살아있으니까 고통이 있는 거죠. 고통 없는 것은 죽기를 바라고 생명을 다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 고통을 이해하기 어렵기에 저도 이런 시들을 쓰는 거죠.”
그에게 시란 무엇일까. “시는 쓴 사람의 것이 아니라 발표되는 순간부터 읽는 사람의 것입니다. 전달자인 시인보다 시를 읽는 사람의 마음에 흐르는 그 무엇이 가장 중요합니다. 결국 시는 인간의 삶을 위한 거죠. 그렇기 때문에 시는 어떤 영혼의 삶에 양식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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