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하더라도 도전 의식과 창의성이 있는 학생들을 키워야 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실수하지 않는 ‘4지선다형 인재’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혁신의 현장을 보면서 우리 교육이 많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더욱 절실히 느꼈습니다.”
김무환 포스텍 총장(사진)은 전자공학과 학생 17명과 함께 지난 6~9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20’을 둘러봤다. 학생들에게 빠르게 변하는 기술현장을 보여주고 도전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서였다. 또 스스로에게는 “학교 교육의 방향을 놓고 해답을 찾기 위한 출장”이라고 했다.
CES 전시장 부근에서 만난 그는 소니가 전기자동차를 내놓았듯이 업종의 파괴가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총장은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인 BOE가 TV시장에 진출하고, 배터리를 만드는 LG가 자동차에 뛰어드는 등 수직계열화를 통한 경계 허물기는 앞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전통 제조기업도 마찬가지다. 김 총장은 “제조업체들도 자기 영역에서 정보기술(IT)을 얼마나 잘 결합하는지가 승부처가 되고 있다”며 “인공지능(AI) 자체가 아니라 AI와 결합한 자동차, 항공, 화장품 등 즉 ‘AI-X’가 중요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업종과 AI를 모두 아는 융합형 인재를 키워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대학과 기업이 손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CES에서는 구글과 아마존의 AI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기술이 대거 출품됐다. 반면 삼성 빅스비를 기반으로 한 제품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김 총장은 그러나 “AI 전쟁은 아직 승부가 난 게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AI는 이제 시작일 가능성이 크다”며 “기계 학습을 뛰어넘는 획기적인 기술이 나오면서 AI 로직 자체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인재 양성이 시급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총장은 4차 산업혁명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소통’이라고 했다. 그는 “CES에서 삼성이 발표한 볼러 같은 로봇도 인간의 일방적 명령이 아니라 소통의 대상”이라며 “AI가 발달할수록 기계와의 소통 기술이 중요해지기 때문에 우리 교육의 틀도 거기에 맞게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총장은 이번 CES에 참가한 포스텍 출신 창업 기업 7곳을 일일이 방문하고 격려했다. 그러나 그는 “일본 프랑스 영국 이스라엘 등은 국가관을 만들어 무리 지어 참가했는데 한국은 제각각 나와 통일된 이미지를 심어주지 못했다”며 “정부 지원을 받는 업체들을 엄선하고 참여 형식도 통일해 내용을 더 충실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총장은 혁신은 평지돌출(平地突出)이 아니라 대기만성(大器晩成)형이라고 강조했다. 혁신은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오랜 시간 부단히 키워낸 기술들이 결실을 볼 때 나타난다는 것이다. 현대자동차 제네시스가 북미 최고의 차에 선정된 것이나 샤오미가 품질이 뛰어난 제품을 내놓은 것도 실수가 아니라 많은 투자와 오랜 기술 개발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런 측면에서 김 총장은 최근 정부 주도로 AI 등에 투자가 몰리는 현상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선택과 집중을 하는 분야는 경쟁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지 정부가 처음부터 방향을 정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 총장은 “우리 사회의 조급증으로 또다시 각광받는 일부 분야에만 재원을 단기적으로 집중 투자하려는 성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정말 혁신을 원한다면 기초과학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적인 연구와 창업을 지원하는 장기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무엇보다 CES를 통해 학생들에게 도전의식을 심어주고 싶어 했다. 그는 “우리가 해온 교육은 한두 개 틀렸다고 야단치고, 기발한 생각을 하면 싹부터 잘라버렸다”며 “다른 생각에 대해서는 격려해주고 기술 교육보다는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교육을 하지 않으면 매년 바뀌는 기술 변화를 따라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 총장은 CES를 둘러본 뒤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해 실리콘밸리의 IT 기업에서 일하는 포스텍 졸업생 20여 명과 간담회를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학위과정에 있는 학생들이 6개월 단기연수를 학교보다는 기업에서 하는 게 창업 의욕을 고취시키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학생들이 실리콘밸리 기업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학교가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라스베이거스=김남영 기자/좌동욱 특파원 ny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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