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2020년 삼성인에게 바란다

입력 2020-01-14 18:23   수정 2020-01-15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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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연말 인사를 거른 채 새해를 맞았다. 세대교체와 조직의 신진대사가 막힌 데 따른 안팎의 우려가 적지 않다.

하지만 많은 임직원이 여러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거나 구속된 마당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인사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았을 것이다. 사법적 결말이야 어찌됐든 회사의 기존 의사결정 시스템을 충실히 따른 사람들이다. 그들의 고단하고 외로운 처지를 감안하면 도의적 측면에서라도 인사를 미루는 것이 온당했다.

그래도 금명간 사장단-임원 인사와 후속 조직개편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 더 이상 지체하다간 새로운 10년의 초석을 놓을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그동안 삼성에 제기된 문제들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대립과 갈등적 요소들이 개별 기업에 집약된 성격을 띠고 있다. 선단식 그룹체제, 경영권 승계, 금산복합, 무노조 고수 등은 ‘1등 삼성’의 또 다른 단면이었다.

이제 삼성은 이런 문제들을 단계적으로 조정·극복하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밖으로는 모든 산업이 영속적 전환기에 접어들었다고 할 정도로 전대미문의 격랑이 일고 있다. 지식과 정보의 유통비용이 제로에 가까워지면서 성공적 아이디어는 단숨에 전 세계로 퍼져 기존 기업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이번 CES에서 글로벌 모빌리티 장악이라는 원대한 구상을 밝히며 더 이상 자동차 회사에 머물지 않을 것임을 선언했다. 한국 기업들에서 이렇게 상상력을 자극하는 전복적 혁신은 오랜만에 본다.

삼성의 내부 정비는 빠를수록 좋다. 과거 무노조 경영에 대한 사과문을 내놓고 외부 비판자들로 준법감시위원회를 구성한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타협도, 굴복도 아니다. 글로벌 기업의 위상에 걸맞은 면모를 갖추는 것이다. 강물은 늘 한 방향으로만 세차게 흐르지 않는다. 의도치 않게 지류가 만들어지고 웅덩이와 늪도 생겨난다.

관건은 방향과 속도다. 최고경영자가 모든 문제를 챙기고 해결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과거 톱다운 경영 시절의 이병철-이건희 회장은 임직원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갖고 있었다. 앞선 문물에 접근할 수 있는 채널이 제한적이고 비용 또한 비쌌기 때문이다. 오너들의 결정적 역할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그들은 외부 지식의 내부 전달자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이 그 분수령이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과학과 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지식과 정보의 지평을 평평하게 만들고 있다. 경영자와 직원 간의 격차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사업장 한편에서 시도한 작은 변화가 산업 전반의 와해적 혁신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삼성인들은 자질이 우수하고 애사심도 높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내부 기회와 자원도 풍부하다. 전 세계 50만 명의 직원이 포진한 사업장엔 많은 정보와 사업기회들이 넘쳐난다.

삼성의 진정한 자산은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엄청난 지식과 네트워크다. 이것들이 얽히고설키도록 기업조직과 문화를 재편하는 것이 중요하다. 변화는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변방에서 중심으로 진행돼야 한다. 현장의 작은 성공을 차곡차곡 모아야 한다.

거대기업의 혁신 경로는 전통적 톱다운일 수 없다. 삼성 경영진은 관료적 통제로 이들의 발목을 잡지 말아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기업가적 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수평적 협업시스템을 도입하고 혁신을 장려해야 한다. 노조도 이런 사람들이 만들도록 내부 공감대를 모아야 한다. 갈등조차 대화와 협력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야 회사와 임직원들에게 도움이 된다. 삼성 사람들이 노조를 만들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2020년 삼성인들의 건투를 기대한다.

ji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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