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세금' 기업 준조세 141兆…법인세의 두 배

입력 2020-01-16 17:17   수정 2020-01-17 01:20


“한국에서 기업하려면 준조세(準租稅)를 잘 따져봐야 합니다. 4대 보험과 각종 부담금으로 나가는 돈이 법인세보다 더 많거든요.”(중견 제조업체 대표 A씨)

‘세금 아닌 세금’으로 불리는 기업 준조세 규모는 법인세의 두 배에 이른다. 과도한 준조세가 기업 활력을 해치고 고용을 막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16일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국내 기업이 부담한 준조세는 141조4000억원으로 법인세(70조9000억원)의 두 배에 달했다. 준조세 규모는 2016년 129조2000억원, 2017년 132조9000억원 등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준조세는 세금은 아니지만 반드시 납부해야 하는 부담금을 말한다. 한경연은 기업이 내는 4대 보험료(국민연금·고용보험·건강보험·산업재해보험) 등 사회부담금과 전력산업기반기금, 폐기물처분부담금, 환경개선부담금 등 각종 법정부담금을 준조세로 봤다.

2018년 기준으로 준조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건강보험료로 고용주가 28조8000억원을 부담했다. 국민연금(19조2000억원), 산재보험(7조4000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준조세는 앞으로 더 가파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건강보험료와 고용보험료를 급격히 올리고 있어서다. 정부는 매년 1~2%대에 머물렀던 건보료 인상률을 3%대(작년 3.49%, 올해 3.20%)로 끌어올렸다.

기업들이 내는 실제 준조세는 통계치보다 클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자발적 기부금은 준조세에 포함하지 않는데, 정치권과 정부가 사실상 ‘반강제적’으로 걷는 기부금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비선 실세’인 최순실 씨의 개입 의혹을 받은 미르재단에 기업들이 수십억~수백억원의 기부금을 낸 게 대표적이다.

현 정부 들어서도 비슷한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정부는 작년 10월 “향후 세계무역기구(WTO) 협상 때부터 농업 부문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데 대해 농민들이 반발하자 “대기업들로부터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더 걷겠다”고 했다. 농어촌기금은 2015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 때 “FTA로 혜택을 보는 기업이 이익의 일부를 농민과 나눠 갖자”는 취지로 조성됐다.

농어촌기금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내도록 규정돼 있지만 정부와 여당은 노골적으로 대기업 출연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부가 기금에 직접 출연하는 것은 반대하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개도국 지위는 정부가 포기했으면서도 그에 따른 부담은 온전히 기업에만 떠넘기겠다는 의미”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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