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4월 29일 서울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의사당 건물 부지)에 국립극장이 들어섰다. 해방 5년, 정부 수립 2년 만에 설립된 아시아 최초의 국립극장이었다. 초대 극장장은 극작가 유치진이었다. 다음날 창설 첫 공연으로 유치진이 쓰고 허석과 이화삼이 연출한 ‘원술랑’이 무대에 올랐다. 국립극장 소속으로 국립극단 전신인 신협과 극협이 제작한 연극이었다. 작품을 보려는 사람들이 몰려 극장의 유리가 깨질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평일엔 하루 2회, 주말엔 3회 공연을 했고 입석표까지 팔았다. 1주일간 원술랑 공연을 본 관객은 5만 명에 달했다.
그해 6월 25일 전쟁이 발발했다. 개관 58일 만에 잃어버린 극장 기능은 1953년 대구 문화극장으로 다시 살려냈다. 이후 명동(1957년)과 장충동(1973년)으로 옮겨가며 국립극장은 한국 문화예술의 터전으로 자리 잡았다. 다양한 장르에서 공연예술의 초석을 다지고 창작의 산실 역할을 해온 국립극장이 올해 창설 70주년을 맞는다. 김철호 국립극장장은 15일 서울 동대문 JW메리어트동대문스퀘어서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국립극장은 해방 후 어수선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아시아 최초의 국립극장으로 문을 열었다”며 “먹고 살기 힘들었던 당시에 문화예술을 통해 국가의 미래를 그려갈 계획을 세우고 국립예술단을 만든 결정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국립극장은 올해 ‘70돌’을 축하하기 위해 다양한 기념 공연을 마련했다. 국립극장 전속단체인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뿐 아니라 2000년 재단법인으로 독립한 국립오페라단과 국립발레단, 국립합창단, 2010년 재단법인으로 독립하면서 서계동으로 이전한 국립극단 등 7개 국립예술단체가 힘을 합쳤다.
4월 29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앞 광장에서 열리는 70주년 기념식에선 70년 역사상 처음으로 이들 예술단체가 함께하는 무대가 펼쳐진다. 김 극장장은 “과거 2~3곳의 단체가 함께하는 무대는 가끔 있었지만 이렇게 꾸미는 무대는 처음”이라며 “국립극장의 과거 공연과 역사를 기반으로 현재의 위상을 돌아보고 미래의 나아갈 방향까지 그리는 내용으로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단체별로도 70주년 기념 공연을 펼쳐보인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특별히 마련한 초연 무대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3월 26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이영조 작곡의 ‘시조 칸타타’를 들려준다. ‘어부사시사’ 이후 10년 만에 내놓는 새로운 합창 프로젝트다. 김성진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은 “70명의 관현악단 단원과 90명의 창원시립합창단까지 160명이 꾸미는 무대”라며 “한국의 혼이 담긴 깊이 있는 울림을 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창극단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국립극장 극장장을 지낸 김명곤 연출로 창극 ‘춘향’을 선보인다. 1962년 창단 기념으로 무대에 올린 ‘춘향’ 공연을 떠올리며 기획했다. 작창을 맡은 유수정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은 “70년이라는 역사의 무게만큼 제대로 된 공연 올리고 싶었다”며 “전통적인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오페라단은 한국 사회의 빈부격차를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낸 창작오페라 ‘빨간 바지’(국립극장 달오름, 3월 27~28일), 국립무용단은 우리 전통 기악양식인 산조를 바탕으로 한국 춤의 멋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산조’(세종문화회관 대극장, 4월 18~19일)를 초연한다.
국립극단은 1964년 국립극장 희곡 현상공모 당선작인 ‘만선’(국립극장 달오름극장, 4월 16일~5월 2일)을 다시 무대에 올린다. 작은 섬마을에서 살아가는 곰치 일가를 통해 1960년대 한국 서민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은 작품이다. 남산 국립극장 시절 대표 레퍼토리를 원로 배우 오영수, 김재건 배우 등과 함께하며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자리다. 국립발레단(5월 8~9일, 명동예술극장)과 국립합창단(5월 15~16일, 명동예술극장)은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아온 레퍼토리를 선별해 ‘베스트 컬렉션’으로 분위기를 달군다.
70주년 행사는 무대 밖에서도 이어진다. 4월 28일엔 아시아 최초로 창설된 국립극장의 의미와 위상을 짚어보는 학술대회가 열리고 4월 29일부터 5월 16일까지는 국립극장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사진전이 열린다. 각계 전문가가 필진으로 참여한 ‘국립극장 70년사’도 발간할 예정이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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