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극장가에 한국 영화 3파전이 펼쳐질 전망이다. 웰메이드 정치극 ‘남산의 부장들’과 B급 감성을 내세운 액션코미디 ‘히트맨’, 참신한 소재의 코미디 ‘미스터 주:사라진 VIP’다. 설 연휴 가족 관객들은 격동의 현대사를 음미해 볼지, 한바탕 웃으며 시간을 보낼지 선택할 수 있다.
격동의 현대사를 권력암투로 담아내
총제작비 208억원을 투입한 ‘남산의 부장들’은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까지 40일간의 이야기를 다뤘다. 김충식 작가가 쓴 논픽션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내부자들’과 ‘마약왕’을 잇는 우민호 감독의 ‘욕망’ 3부작 완결편이다.
영화는 김규평(실제 인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박용각(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곽상천(차지철) 경호실장 간의 권력암투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김규평(이병헌 분)이 박 대통령을 시해할 수밖에 없던 상황을 그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극중 박 대통령의 용인술이 관전 포인트다.
2인자를 키우지 않는 박 대통령은 중앙정보부장에게 경호실장이 대놓고 견제하는 분위기를 만든다. 또 “임자 곁에는 내가 있잖아. 마음대로 처리해”라며 강경책을 부추긴 뒤 정작 논란이 커지면 실행자를 제거한다. 이런 상황을 지켜봤던 김규평은 자신이 제거될 차례가 왔다고 느꼈을 때 어떤 행동을 할까.
권력싸움에서 수모와 모멸감을 느끼는 김규평의 감정 변화를 살펴보는 게 이 영화의 매력이다. 박 대통령을 연기하는 이성민의 싱크로율도 재미를 배가시킨다. 1970년대 시대상을 재현한 세트, 미국과 프랑스 등의 로케이션 장면들이 어우러져 격동의 현대사를 한걸음 물러서서 살펴볼 기회를 준다. 인물들의 욕망에 따른 상황 변화가 첩보 스릴러처럼 빠르고 신선하게 전개된다.
만화 같은 상상으로 꿈을 성취하다
최원섭 감독의 ‘히트맨’은 만화적인 상상력과 노골적인 B급 감성으로 이끌어가는 액션코미디다. 한 손에는 색연필 세 자루를 ‘엑스맨’처럼 손가락 사이에 끼웠고, 다른 손에는 권총을 들고 있는 포스터가 시사하듯, 대놓고 웃기려는 영화다. 유튜브와 웹툰, 랩과 같은 젊은이들 취향과 아재 개그를 정신없이 넘나들며 혼을 빼놓는다.
어렸을 때 불의의 사고로 부모를 잃은 뒤 국정원 요원 덕규(정준호 분)에게 발탁돼 암살 요원으로 길러진 수혁(권상우 분)은 웹툰 작가의 꿈을 이루려 죽음을 위장해 국정원을 탈출한다. 15년 뒤 그가 연재하는 웹툰에는 온갖 악플이 달린다. 꿈과 현실은 다른 것일까? 돈벌이도 시원치 않아 아내(황우슬혜 분)의 구박에 시달린다. 괴로워하던 수혁은 랩 가사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써보라는 딸의 조언에 따라 술김에 국정원 시절 겪은 1급 기밀을 웹툰으로 그린다. 인터넷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지만, 그는 국정원과 테러리스트의 이중 타깃이 된다.
만화 같은 설정과 대사, 활기찬 액션이 어우러진다. 권상우는 잘 다듬어진 몸으로 액션과 코미디를 넘나들고, 정준호는 오랜만에 코미디 영화로 돌아와 관객들을 웃긴다. 황우슬혜는 톡톡 튀는 감성 연기로 미워할 수 없는 아내 역을 그려낸다.
이 작품에서 리얼리티를 기대할 필요는 없다. 상상력을 얼마나 재미있게 펼쳐놓느냐가 주어진 미션이다. 누리꾼들은 “웃긴다”는 댓글을 쏟아내고 있다.
동물과 대화하며 미션을 완수하는 요원
김태윤 감독의 ‘미스터 주:사라진 VIP’는 동물과 소통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동물을 무서워하는 국가정보국 에이스 요원 주태주(이성민 분)는 승진 욕심에 중국에서 온 특사 판다 밍밍의 경호를 자처한다. 하지만 밍밍을 탈취당하고 추격 중 사고까지 당하면서 동물들의 말이 들리기 시작한다. 그는 이제 셰퍼드 알리와 공조해 추격전을 펼친다.
한국 영화로는 드문 시도로 소재를 확장했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최근 상영한 할리우드 영화 ‘닥터 두리틀’에서 비슷한 컨셉트를 목격한 터라 신선함이 반감된다. 웃음을 주기 위한 감초 역할로 등장하는 배정남이 늘 엉뚱한 지점에서 튀어나와 감정의 흐름을 끊어놓는 것도 문제다. 이야기 구성이 촘촘하지 못하다는 얘기다.
그나마 우리말을 하는 다양한 동물은 컴퓨터그래픽(CG)으로 비교적 자연스럽게 구현했다. 동물 목소리는 신하균, 유인나, 김수미, 이선균, 이정은 등 쟁쟁한 배우들이 참여했다. 영화 팬들이라면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아내는 재미도 곁들일 수 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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