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SNS에는 흑인 비하 표현인 ‘검둥이(nigger)’ 등 입에 담지 못할 내용이 가득했다. 라건아는 “우리 가족의 터전은 이곳”이라고 말할 만큼 한국에 애정이 깊다. 그런 그가 일상이 되다시피 한 욕설에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을까.
라건아 사례는 우리 사회 저변에 넓게 퍼진 ‘다름’에 대한 차별과 비하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상대를 깎아내리는 혐오적인 표현이 판을 치는 정치권에선 이런 일이 다반사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엊그제 “장애인은 선천적으로 의지가 약하다”는 실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이 대표는 2018년 “정치권에 정신 장애인이 많다”는 말을 했다가 뭇매를 맞기도 했다. 자유한국당은 이 대표의 발언을 지적하는 논평을 냈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비뚤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장애인”이란 표현이 장애인의 분노를 산 것이다.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부족과 편견은 한국을 문명국가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다. 2017년 서울 강서구에서 장애아 부모들이 “우리 아이들도 학교 가게 해달라”고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무릎을 꿇었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11만여 명에 이르는 몸 불편한 아이들이 가까운 교육시설이 없어 통학에 하루 2~3시간씩 허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장애에 대한 편견과 부족한 교육시설 탓에 미국 등 선진국으로 이민 가는 장애인 가정이 적지 않다. 외국인 노동자, 새터민 등에 대한 차별도 끊이지 않는다.
프랑스 철학자 장 디디에 뱅상은 《인간 속의 악마》(1997)에서 “우월감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인간 본성이 증오와 혐오 등 인간 속에 내재한 악마를 드러내게 한다”고 했다. 그는 ‘악마적 감정’은 단일민족 의식과 유교적인 사농공상(士農工商)식 위계서열이 강할수록 세다고 지적했다. 감성적 민족주의와 서열 나누기가 팽배한 한국 사회가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개방과 혁신이 화두인 무한경쟁 시대에 ‘다름’을 적극 수용해 국가 매력도를 높이는 일이 시급하다. 뱅상이 지적한 대로 “혐오는 사회 발전을 가로막고 상대방에게 또 다른 악마를 키우게 할 뿐”이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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