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1단계 무역합의에 서명하며 ‘휴전’을 선언했다. 세계 1, 2위 경제대국이 정면충돌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면서 글로벌 경제도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됐다. 하지만 1단계 합의 곳곳에 판을 흔들 수 있는 ‘뇌관’이 숨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정부의 보조금 문제를 다뤄야 할 2단계 협상은 1단계 협상보다 훨씬 험난해 ‘종전’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분석이다.
양국이 1단계 무역합의에 도달한 것 자체는 평가할 만한 일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10월 보고서에서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누적손실이 2020년까지 총 7000억달러(약 800조원)로 글로벌 총생산의 0.8%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1단계 합의로 이런 우려는 덜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오늘 우리는 이전에 중국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중요한 발걸음을 내디딘다”며 “이번 합의가 전 세계를 훨씬 더 안정적인 평화로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이번 합의는 중국과 미국, 전 세계에 유익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당장 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1단계 합의에도 불구하고 미·중이 무역전쟁에서 부과한 관세가 대부분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국에서 수입하는 연간 5300억달러어치의 제품 중 거의 절반인 2500억달러는 25%의 징벌적 관세가 유지된다. 1200억달러어치는 관세가 15.0%에서 7.5%로 축소된다. 고율관세가 면제되는 건 30%(1600억달러어치) 정도다. 게다가 중국은 이번 합의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대한 보복관세를 축소하거나 철회하지 않았다.
영국 경제분석 기관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15일(현지시간) 보고서에서 1단계 합의가 미국 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0.1%포인트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 양자 관계 전망이 보다 명확해질 때까지는 정책 불확실성이 높아 기업들이 관망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1단계 합의가 제대로 이행될지도 불확실하다. 중국은 합의문에서 앞으로 2년간 2000억달러어치 미국 제품을 추가 구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연도별로 보면 올해가 767억달러, 내년이 1233억달러다. 미국은 올해 11월 3일 대선을 치른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해도 중국이 합의를 지킬지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특히 중국의 미국 농산물 구매 약속은 이행이 쉽지 않다. 무역전쟁 발발 전인 2017년 중국의 미국 농산물 구매액은 240억달러였다. 이를 약속대로 연간 400억달러 수준으로 늘리려면 구매액을 67% 높여야 하는데 만만치 않은 과제다. 페르난도 밸리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애널리스트는 “(무역합의를) 어떻게 실행할지 명료하지 못하다”며 “그냥 던져진 큰 숫자들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합의문에 들어간 지식재산권 보호, 시장 개방 확대, 환율조작 금지 등을 충실히 지킬지도 의문이다.
주목할 점은 중국의 약속 위반 시 미국이 90일간 협의를 거쳐 관세를 원상복구할 수 있다는 ‘스냅백’ 조항이 합의문에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합의 이행 과정 곳곳에 분쟁의 불씨가 남아 있는 것이다.
2단계 협상은 더 험난하다. 무엇보다 1단계 합의에선 중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 문제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 기업들이 직간접적인 정부 보조금을 받는 바람에 미국 기업들이 불리한 경쟁을 하고 있다고 불만을 제기해왔다. 반면 중국은 이런 문제에 소극적이었다.
또 기술이전 강요, 지식재산권 보호 등 1단계 합의문에 들어간 다른 구조개혁 이슈는 ‘선언적’ 수준에서 거론됐을 뿐이란 지적도 있다.
게다가 중국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 제재 문제, 대만·홍콩·신장위구르자치구 등 중국이 민감해하는 지정학적 문제까지 얽혀 있다. 2단계 협상은 1단계보다 훨씬 어려운 고차방정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2단계 협상이 매우 어렵다는 지적을 의식해 “2단계 합의 단계는 2A, 2B, 2C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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