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일 중 300일 비…쌀·파·녹차 재배
이란(宜蘭)은 타이베이에서 차로 한 시간이면 닿는 대만 북동부의 도시다. 과거 이란과 타이베이를 오가는 유일한 통로는 산길이었다. 두 명이 겨우 다닐 만한 좁은 산길을 따라 이란의 상인들은 그날 잡은 생선을 타이베이로 지어 날랐다. 물리적으로는 그리 멀지 않아 다행히 하루 만에 왕복할 수 있는 길이었다고 한다. 타이베이와 이란의 길은 설산터널이 뚫리며 가까워졌다. 터널의 길이는 12.9㎞. 우리나라 양양터널보다 길다.
이란은 동쪽은 태평양, 서쪽과 남쪽, 북쪽은 설산산맥과 중앙산맥에 가로막힌 땅이다. 바다와 산으로 길이 막힌 탓에 이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란 사람들에게 농사는 삶을 이어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란의 자랑거리를 물으면 이란 사람들은 공기를 첫 번째로 꼽는다. 좋은 공기는 농작물을 건강하게 기른다. 핵심 농작물은 이란평야에서 재배되는 쌀. 1년 365일 중 300일은 비가 내리는 이란에서 쌀보다 적합한 농작물을 찾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싼싱(三星) 지역에서 재배하는 파도 유명하다.
퉁화촌 유기농 레저농장은 가장 이란다운 이란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의 첫 번째 주인공은 쌀. 직접 재배한 쌀을 일어 정미기에 넣으면 쌀은 백미와 쌀눈으로 분리된다. 쌀은 체험하는 이들의 몫으로 포장되고, 쌀눈은 닭과 돼지 등 가축의 사료로 사용된다. 쌀 다음은 파를 이용해 충유빙(한국의 파전이나 호떡과 비교되는 대만의 간식거리)을 만드는 체험이다. 단순히 반죽에 파만 듬뿍 넣어 구워낼 뿐인데 맛과 향기가 뛰어나다. 이란의 파는 매운맛이 덜하고 달다는 지역민들의 주장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맑은 공기로 대변되는 이란의 생태는 싼푸 레저농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만에 서식하는 30여 종의 개구리 중 22종이 출몰하는 곳이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저녁, 라이트를 든 가이드와 함께 길을 나선다. 이내 뒷다리 쪽 아랫배가 붉은 ‘빨간 팬티를 입은 개구리’가 나타난다. 인삼 향기가 나는 대벌레와 사람을 잘 문다는 독사까지, 다행히 독사에 물려 죽은 이는 없다고 했다.
싼푸 레저농장과 멀지 않은 곳에는 녹차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는 샹위 유기농 레저농장이 있다. 현지 일꾼과 똑같은 모자와 토시를 장착하고 바구니까지 허리춤에 매면 차밭으로 갈 채비는 끝. 이후 찻잎을 따고 덖고 비비고 말리는 녹차 만들기의 전 과정을 체험한다. 자연 건조와 발효 과정이 필수인 우롱차와 홍차에 비해 녹차는 비교적 짧은, 두 시간 내에 만 들어진다. 건조 과정에 꽃잎을 넣어 꽃향기를 머금은 이곳의 녹차는 그 맛이 특별하다.
전 세계 90여 종 고래 중 30여 종 출몰
이란현에서 남쪽으로 태평양을 끼고 길을 이으면 화롄(花蓮)이다. 우리에게는 타이루거 국가공원이 있는 곳으로 잘 알려진 화롄은 대부분의 땅이 산악으로 이뤄져 있다. 평지는 전체 현의 면적 중 불과 7%. 가장 넓은 평지인 화롄시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아간다. 타이루거도 좋지만 화롄시 화롄항의 볼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고래다.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으나, 현지인들은 대만 동부에서도 돌고래 투어의 최적지는 화롄이라고 입을 모은다. 태평양을 품은 대만 동부의 바다에서는 전 세계 90여 종의 고래 중 30여 종이 관찰된다. 다양한 종의 수만큼 고래를 볼 수 있는 확률도 높다.
화롄항에서 출발한 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속도를 늦췄다. 돌고래가 발견된 거다. 저 멀리 돌고래들이 수면 위로 깡충깡충 뛰어오르자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진다. 이게 끝이 아니다. 돌고래 곁으로 몸을 붙인 배는 돌고래와 속도를 맞춰 달린다. 아니, 배의 속도에 맞춰 묘기에 가까운 돌고래의 유영이 시작됐다. 천천히 움직이다가도 배가 속도를 올리면 돌고래도 무섭게 속도를 낸다. “찌엔시아(見下, 아래를 봐)! 찌엔시아!” 흥분 섞인 목소리가 배 안 가득 울린다. 이날 관찰한 돌고래 수는 약 200마리에 달했다. 많은 날은 수천 마리의 고래를 볼 수 있다니 보통 수준인 셈이다. ‘운’을 운운하는 다른 고래 투어와는 차원이 다르다.
리촨 어장은 산과 바다가 풍부한 화롄의 지형을 백분 활용한 양식장이다. 양식장의 위치는 해암산맥과 중앙산맥 사이. 태평양 바닷물이 해암산맥을 넘어 증발해 중앙산맥에 비를 내리면, 그 물로 조개와 민물생선을 키운다. 양식 조개의 이름은 황진셴(黃金). 황금조개라는 뜻인데 크기가 큰 재첩이라고 보면 된다. 황진셴은 식당에서 탕과 볶음 등의 요리로 맛볼 수 있다. 도미와 귀비라는 이름의 민물생선과 더불어 푸짐하게 즐길 수 있는 합리적인 밥상이라 현지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남쪽으로 더 내려간 펑린진(鳳林)의 신광자오펑 레저농장도 인기다. 신광자오펑은 신광상회 잡화점에서 시작해 현재 백화점과 은행 등을 소유한 대만의 대기업. 개인이 운영하는 레저농장과는 달리 규모가 방대하다. 이곳 레저농장을 가꾸어 이끄는 직원의 3분의 1은 대만 원주민이다. 푸젠성에서 대만으로 한족이 건너오기 전까지 대만은 원래 원주민이 살아가던 땅이었다. 한족과의 갈등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원주민들은 산으로 은신하며 명맥을 유지했는데, 지금의 대만은 원주민과의 조화를 꾀하고 있다.
마타이안 습지의 신뤼 농원 역시 그런 곳이다. 신뤼 농원은 대만 원주민 중 하나인 아메이족 부락에 조성된 농장으로 아메이족 부락민들이 농장 운영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색색의 실로 아메이족과 함께 만든 머리띠를 두르고 전통 춤을 추는가 하면, 대나무 혹은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통으로 물고기잡이 체험을 하는 식이다. 생선과 물을 넣은 큰 대나무통 안에 400도가량 뜨겁게 달군 돌을 여러 차례 투하해 끓이는 전통 요리인 스터우훠궈(石頭火鍋)는 보는 재미와 먹는 재미를 동시에 안겨준다.
계절마다 색을 달리하는 땅
화롄에서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대만 남동부의 현, 타이둥(台東)이다. 중앙산맥의 해발 3952m 위산(玉山)을 등에 업은 타이둥. 푸농족, 아메이족 등 타이둥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6개 부족의 원주민을 포함한 주민들은 산맥과 산맥이 이룬 골짜기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살아간다.
화롄의 푸리향(富里鄕)을 넘어 타이둥 츠상향(池上)으로 향한다. 츠상향은 대만의 이름난 쌀 생산지. 평범한 농촌 마을의 논길은 보랑(브라운) 카페 광고에 등장하며 보랑다다오(伯朗大道)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일약 스타덤에 오른 논길로 도시민들은 모여들었다. 전봇대 하나, 가로등 하나 없는 논길은 계절마다 색을 달리할 뿐인데 평화와 안식을 준다.
산골짜기에 자리 잡은 푸농부락에서도 눈과 귀가 정화된다. 푸농부락은 대만 원주민의 하나인 푸농족의 터전으로 전체 4만여 푸농족 중 2000~3000명이 살아가는 마을이다. 산이 감싸 안은 부락에는 푸른 풍경과 공기가 있다. 매일 오전 10시30분과 오후 2시에 열리는 공연에서는 화음이 깃든 노래를 즐긴다.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는 노래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름답다.
푸농부락과 멀지 않은 곳의 추루야자림에서는 석가(스자)를 따는 즐거움을 누리자. 석가는 부처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 이름 지어진 과일. 영어로는 커스터드 애플(custard apple)이라고 한다. 8월부터 3월까지 제철에 생산된 석가는 망고에 비할 정도로 달다. 대만에서는 두 종류가 생산되는데, 그중 하나인 파인애플 석가는 비교적 단단하고 크며, 감과 망고를 섞은 듯한 맛이 난다. 일반 석가는 식감이 무르고 매우 달며, 아카시아 꽃향기를 품고 있다. 석가 외에 농장주 할아버지의 기행적 행동은 뜻밖의 즐거움이다. 나무이파리는 기본이고 입에 닿는 모든 물건으로 피리를 분다.
대만=이진경 여행작가 jingy21@hanmail.net
여행정보
타이베이의 레저농장은 1~2시간 체험에 끝나는 한국의 체험 농장과 달리 미식과 체험, 숙박 등을 즐길 수 있다. 과수원, 산림, 어장, 목장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 안성맞춤이다. 타이베이는 왕복 항공권과 유효기간이 6개월 이상 남은 여권을 소지하면 무비자로 90일간 체류할 수 있다.
만 17세 이상, 최소 신장 140㎝의 한국 전자여권 소지자는 대만 자동출입국시스템 이게이트(e-Gate)를 신청할 수 있다. 타오위안 공항 1·2 터미널과 쑹산 공항 등 지정된 등록 센터에서 등록한 뒤 이용할 수 있다. 타이베이의 전압은 한국의 둥근 콘센트를 꽂을 수 있는 3핀 코드도 있으나 110V 2핀 코드가 즐겨 쓰인다. 일명 돼지코로 불리는 11자 플러그어댑터를 준비하면 좋다.
1뉴대만달러(NT$)는 38.72원이다.(1월 16일 기준) 한국에서 미리 환전하는 게 편하다. 대만에서 미국달러를 환전할 경우에도 공항 환전소와 메가뱅크(Mega Bank)를 제외하고는 환전 가능 금액이 정해져 있고, 수수료가 높다.
관련뉴스